유적지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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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 임진왜란 관련 행사나 승첩지 등 여러분의 역사의 현장체험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충무공이순신장군 동상 1

충무공이순신장군 동상

  • 주소 진해시 도천동 13 번지 소재 (북원로터리) 
  • 전화번호
도시계획에 따라 잘 정돈된 정연한 진해는 북원로터리에 이충무공 동상, 중원로터리에 분수,시계탑, 모형거북선, 남원로터리에 김구선생의 친필 충무공 시비가 있었으나 중원로터리는 2007년 잔디광장으로 조성하였다. 북원로터리의 이충무공동상은 전승지 남해를 굽어보고 있다. 이 동상은 6.25동란의 참화속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건립된 것인데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50년 11월 11일 진해 해군통제부 사령관 김성삼 소장은 해군 창설 제5주년 기념식장에서 식이 끝난 다음 그 기념식에 참석한 경상남도 지사 양성봉과 그 밖의 다수 유지에게 이충무공 동상 건립의 필요성 역설하였다. 그러자 참석자 모두 이에 찬성하여 그 해 11월 19일 마산 시장실에서 사령관 김성삼을 비롯하여 군항에 가까운 각 시,군,읍장과 각 기관 책임자가 모인 가운데 마산시장 강봉용을 회장으로 하는 동상건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마산시를 비롯한 창원군, 통영군, 고성군, 김해군 등에서 각출한 3천만원의 건립기금으로써 그 해 12월 8일 한국 조각계 권위자인 윤효중을 초빙하고 곧 착공하기로 하였으나 마침 정국의 돌변으로 1주일 뒤에 부득이 동상 건립을 중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성회에서는 초지를 굽히지 않고 충무공의 모형만이라도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430만원으로 모형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이충무공의 초상이 전하여지는 것이 없으므로 면모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난관에 봉착하였다. 윤효중은 여러 문헌상에 나타난 그의 생활과 자손의 골상을 조사하고 문무를 겸비한 상으로 고심한 끝에 독자적인 모습을 창안하였다. 1951년 3월 말경 처음으로 모형의 제작이 끝나게 되자 최남선, 이은상, 김영수, 권남우, 김은호 등 이 방면 권위자들이 감상 비평한 결과 만족할 만한 평을 얻지 못하여 3차례에 걸쳐 계속 연구와 고심 끝에 4월 19일 비로소 모형을 완성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형을 완성하게 되자, 기성회장 강봉용과 작가 윤효중 사이에 총 경비를 45,418,800원 (토대공사비는 별도) 으로 체결하고 윤효중은 원형제작에 힘쓰는 한편 7월 1일에 정초식을 올리고 9월 30일에는 동상 상형의 완성을 보아 당시 신익희 (민의원 원장), 안호상, 홍종인을 비롯한 미술계, 사학계의 권위있는 인사를 초청하여 제1차 상형평의회를 열고 10월 7일에는 제2차 평의회를 개최한 결과 의견일치를 보았다 작가 윤효중은 11월 15일 높이 16자의 원형 제작을 완료하고 이어 해군공창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 주조작업에 착수하여 다음 해 3월 28일에 건조가 끝났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밟은 이충무공 동상 제막식은 1952년 4월 13일(임진왜란 발발일),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과 내외귀빈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거족적으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동상의 앞면에는 ‘忠武公 李舜臣像 李承晩 謹書’ 라고 이승만대통령이 쓰시고,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노산 이은상 선생의 찬문이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