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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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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색창연, 금시당 백곡재

 

여름이면 강과 바다로 떠나지만 그 지방의 문화재를 둘러보고 것은 마음의 평온을 느껴보기에도 좋은 피서처가 될 수 있다. 

홀연히 기대어 옛 것들의 촉감을 느껴보는 시간들은 나를 만나고 고단한 일상을 벗어던져 버릴 수 있는 순간이다. 그 순간들이 마음의 평온으로부터 온전히 스며든 시간이 되리라 생각됐다. 

밀양 황성로 24-183번지에 위치한 금시당 백곡재로 향했다. 

활성교 끝 우회전하면 작지만 의미 있는 금시교 가기 전 바로 앞 좁은 길이 있고 그 길 아래 둑길로 향하며 금시당이 있다. 금시당 유원지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금시당 백곡재는 안개처럼 산성산 자락에 오묘한 자태를 드러냈다. 

 

금시당 가는 길에 멋들어진 소나무의 기세가 볼만하다. 언덕에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시원했다. 8월의 금시당은 배롱나무에 핀 진분홍의 향긋함이 나그네를 맞았다. 

대문채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을 나타낸 ‘國泰民安’의 글이 입춘을 맞아 쓴 모양이다. 

금시당은 조선조 명종 때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난 이광진(李光軫) 선생이 자신의 호를 따 1566년에 세운 별서다. 별서는 산성산 일자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용두산(龍頭山) 능선이 내려가고 왼쪽으로는 호두산(虎頭山) 능선이 내려가고 특히 밀양강을 끼고 있어 멋진 풍수지리를 이뤘다.

 

 

고즈넉함이 옛 것들로 사유되는 시간이다. 

 

낮은 돌계단에 올라서면 여주 이씨 가문의 옛이야기를 들릴 듯 조용한 풍경이 펼쳐졌다. 왼쪽에는 높은 기단 위에 주사로 보이는 번듯한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3칸 중문이 나 있다. 중문 너머에는 정면 5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새로 지은 건물이 있다. 

오른쪽에는 협문으로 들어가면 배롱나무의 꽃과 어울려진 금시당이 여름 한때를 밀양강과 함께 유유히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배롱나무에 핀 진분홍의 향긋함이 금시당과 어우러짐에 매료됐다. 

 

금시(今是)라는 이름은 선생이 귀향한 뒤에 도연명의 절개를 흠모하여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있는 ‘覺今是 而昨非’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벼슬살이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지금이 잘한 일이요, 삶을 위해 벼슬길에 올랐던 지난날의 일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정자 건물로 지어졌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의 좌우 2칸 규모의 마루와 온돌방이 있다. 

가장 으뜸의 풍경은 훤히 보이는 밀양 강변과 산세 그리고 여유 있는 금시당 유원지를 바라봄에 한결 시원함이 어느새 온몸을 전율시켰다. 

 

 금시당에서 바라본 밀양강의 유유한 자태에 빠지다. 

 

 

널찍한 마당에 160년 된 매화나무부터 홍도, 함박, 목남, 배롱나무는 금시당 선생의 성품과 닮았다. 올곧은 정신이 베여있는 듯 세월의 무게처럼 담백한 기상이 서려 있다. 

금시당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수령 약 450년 된 은행나무는 단아한 금시당에 비해 하늘로 뻗어 있는 것이 웅장하다. 가을이면 더 빛나는 은행나무는 이곳의 산 역사의 증인이라 하겠다. 

선생은 1566년 금시당의 완성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슬퍼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후 금시당은 그의 아들 근재(謹齋) 이경홍(李慶弘)이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후진을 양성하는 강학소로 사용했다고 전했다.

 

 

웅장함이 서린 은행나무에 서면 경건함이 엄숙하다. 

 

금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탔고 영조 때인 1744년에 이광진의 5 세손인 백곡(栢谷) 이지운(李之運)이 복원했다. 이지운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소학을 중심으로 많은 후진을 양성했던 학자로 이곳에서 문중의 유고와 실기를 모아 철감록(掇感錄)을 편찬했다. 훗날 철감록의 기반으로 금시당 선생의 발자취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금시당 오른쪽에서 강을 바라보는 건물은 백곡재(栢谷齋)다. 6 세손인 이용구가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철종 11년인 1860년에 지은 건물이다. 백곡 서재(栢谷書齋) 현판이 걸려 있고 금시당처럼 간소함으로 그 뜻을 새겼다. 

 

6 세손인 이용구가 이지운을 추모하기 위해 철종 11년인 1860년에 지은 건물, 백곡재(栢谷齋)

 

담장에 핀 송엽국이 별서와 사뭇 이색적이다. 

 

툇마루에 앉아 옛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담아 보았다. 시원한 여름 바람이 잠시 쉬어가는 금시당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심정을 누구에게 호소할까?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마당 끝 2014년부터 고향에 내려와 별서를 가꾸고 관리하며 금시당 선생의 덕행과 가치를 실천하며 명백을 유지하고 있는 16대 종손 이용정(李鏞禎) 씨를 만나 보았다. 

 

정겨움을 더한 장독대 

 

2014년 고향에 들어와 많은 일을 했다. 길을 정비하고 담장을 보수했고 유인물을 만들어 오는 손님에게 정자를 알렸다. 

특히, ‘금시당십이경도’를 들고 부산의 지인을 찾아가 고증을 받고 금시당과 백곡재를 내 힘으로 등록시켰다. 지금도 그의 빛바랜 정신은 ‘금시당십이경도’ 병풍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항상 자신을 낮추어 예를 다하는 모습에서 금시당 선생의 품성을 닮아 삶을 깊이를 더했다. 

 

밀양의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로 근재 이경홍이 부친 금시당 이광진의 병환을 위로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전해온다. 진품은 밀양시립박물관에 소장해 있다.

 

이용정 씨는 “아침에 문을 열면 정자에 부는 풍경과 사시사철 색다른 식물들의 아름다움을 지닌 금시당 백곡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길을 떠나 우리 옛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금시당 백곡재에 올라 선비의 풍류와 멋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자연의 바람을 이곳 정자에서 가슴으로 새로운 마음을 담아 보면 좋을 듯싶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색창연, 금시당 백곡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색창연, 금시당 백곡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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