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 충렬사 전경.
통영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도시입니다. 임진왜란, 전란의 와중 이순신 장군은 제 1대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합니다. 군사기지로 삼은 곳은 통영의 앞바다에 위치한 한산도였지요. 그 이후 평범한 어촌마을이었던 통영은 조선수군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해군 총사령부입니다.
▲ 일정과 월정이 합쳐진 명정(明井).
이런 통영에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역대 삼도수군통제사는 충렬사에 들려 전임자인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예의를 표했습니다. 통영에서 살던 민초들에게도 이곳은 성지였습니다. 조선이 망하고 조선 수군이 해체되었지만, 충렬사는 건재했습니다. 통영의 민초들이 이곳을 지켰기 때문이지요.
▲ 강한루를 지나 돌기둥을 본다.
지역의 명소를 찾은 예술가의 이야기가 전합니다. 바로 시인 백석입니다. 젊은 날의 백석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 상대는 바로 통영에서 나고 자란 박경련이였지요. 백석은 사랑하는 여인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통영으로 떠납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구 마산항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고 통영까지 오는 여정이었습니다.
▲ 누각 아래 계단을 올라 충렬사로.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던 낡은 항구”에 도착한 백석은 곧장 충렬사로 향합니다. 지나는 말로 들었던 사랑하는 이가 사는 동네 명정골을 찾은 것이지요.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백석의 시 “통영 2”의 한 구절을 보면 보다 자세합니다.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 시인의 묘사는 세밀합니다.
▲ 충렬사에 머리를 숙여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백석의 여행은 실패로 끝납니다. 백석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가 사랑한 여인은 다른 이와 결혼을 했지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명정에서 난을 보지 못한 백석은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았습니다.
▲ 이중섭의 충렬사.
충렬사를 찾은 예술가는 또 있습니다. 황소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입니다. 한국전쟁 때의 일입니다. 지인이었던 염색공예가 유강렬은 이중섭에게 통영에 오라고 권유합니다. 이중섭은 이 권유를 받아들이지요. “황소”를 비롯해서 이중섭의 대표작들은 통영에서 탄생합니다. 이중섭은 통영의 풍경 역시 화폭에 담았습니다.
▲ 돌층계를 건너 다시 바깥으로.
“욕지도 풍경”, “세병관 풍경”, “선착장을 내려다 본 풍경”은 이때 탄생합니다. 아참,, 이중섭은 충렬사에 들러 그림을 그렸습니다. “충렬사 풍경”은 이때 탄생한 작품입니다. 시인 백석은 자신의 시 속에, 화가 이중섭은 자신의 그림 속에 충렬사를 담아 낸 것이지요. 충무공을 모신 사당은 이렇듯 예술가의 눈을 통해 그려졌지요.
▲ 충렬사에 핀 동백꽃.
그 옛날 통영은 바닷가 해안마을이었습니다. 통영이 급변한 것은 임진왜란 때문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진을 쳤고, 전쟁이 끝난 후 이순신의 후임자들은 통영을 수군의 모태로 발전시켰지요. 충렬사는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백석과 이중섭 통영의 명소인 충렬사를 찾았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작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인 백석과 화가 이중섭이 찾은 명소 - 통영 충렬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