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밀양 시례호박소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를 우린 흔히 '닉동정맥'이라고 합니다. 낙동정맥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영남알프스는 경상북도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밀양과 양산. 이렇게 5개 시군에 걸쳐 형성된 해발 1,000m 이상 산악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가리키는 말이죠.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가지산'(해발 1241m)은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밀양시 그리고 울산광역시, 이렇게 세 개 시.도가 이웃하는 지역임과 동시에 각각 세 곳의 중심에서 가장 외곽에 위치한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연중 도심보다 늘 2~3도 낮은 기온을 유지하는 곳으로 여름 피서지로 세 지역의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밀양 시례호박소
시례호박소는 세 개 시.도 경계 구역으로 가지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특히 밀양 지역에 위치한 시례호박소는 밀양 팔경 중에 하나로 백운산. 가지산. 재약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는데요. 영남알프스에서 차로 접근한 가능한 가장 깊은 계곡입니다.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갔을 만큼 깊었다고 하는 설화 같은 얘기도 전해지는 곳이자 동국여지승람에서 오랜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소(祈雨所)였다고 전해지는 호박소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여름철 밀양을 대표하는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경상남북도를 통틀어 유일한 스키장이자 대한민국 최남단 스키장 '에덴밸리스키장' - 영남알프스 자락에 위치한다
여름철 서늘한 날씨는 겨울에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이러한 기후로 거창의 남덕유산과 더불어 경남에서 가장 눈이 많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경상북도에도 없는 스키장이, 경상남도 양산에 있다는 사실을 도민들조차도 모르곤 하는데요, 대한민국 최남단 스키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 바로 영남알프스 자락의 양산 지역입니다. 다만 영남알프스 지역으로 눈이 내리더라도 양산, 밀양, 울산 도심에는 대부분 비로 내리는 탓에 이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 1월 하순 역시 제가 사는 울산에 새벽부터 겨울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일찍 일어나 겨울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영남알프스로 향했습니다. 이 정도 비면 영남알프스 쪽에는 많은 눈이 쌓였으리라, 기대하며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울산과 밀양의 경계인 가지산터널을 진입할 때까지도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어느새 새하얀 설국으로 변해 있습니다. 동영상은 그렇게 하얀 눈을 맞으며 얼음골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겁니다. 동영상에서 그날의 분위기를 살짝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시례호박소 입구
주차장 옆 화장실도 새하얀 눈으로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영남알프스 자락에 눈이 내린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밀양 시례 호박소를 추천하는 편입니다.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차로 접근 가능한 가능 깊은 계곡이 바로 이곳 시례호박소이기 때문입니다. 얼음골 케이블카 승차장을 지나 '과연 계속 길이 있을 것일까?' 걱정이 들 무렵, 깊숙한 계곡 앞에 넓은 주차장이 나올 정도로 겨울에도 접근성이 좋은 곳이자 눈이 잘 쌓이는 곳입니다.
주차장에서 150m만 걸으면 호박소에 닿을 수 있다
시례호박소와 함께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파래소 폭포 - 주차장에서 1Km 남짓 산행을 해야 한다
시례호박소와 더불어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폭포로 '파래소 폭포'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눈 내린 파래소 폭포 역시 풍경은 아름다우나 주차장에서 1Km 남짓 산행을 해야지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쉽게 추천하기가 조금 망설여지지요. 반면에 호박소는 주차장에서 150m 정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걸으면 닿는 곳이니만큼 접근성이 탁월한 편입니다.백연사
백연사 설경
주차장을 지나 호박소보다 먼저 찾는 이를 받겨 주는 곳이자 설경을 아름다움을 먼저 보여주는 곳이 백연사입니다. 본당 한 채와 요사채로 이루어진 백연사는 산내면 우체국장 손영기씨의 부친 손숙현씨가 창건한 사암(私庵)입니다. 옆의 대나무 숲과 호박소가 함께 빚어낸 겨울 풍경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호박소 계곡
여름철 피서객을 위해 넓은 공간을 조성해 두었다
백연사를 지나자마자 꽤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요, 아마 처음 찾은 이라면 깊숙한 계곡 안에 이 만큼 넓은 공간이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했을 겁니다. 여름 성수기에는 주차장에 주차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많은 인파가 찾다보니 피서객을 수용하기 위해 계곡 안에 넓은 공간을 마련한 것이지요. 덕분에 조금 답답한 계곡의 모습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겨울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계곡입니다.
시례호박소 보행자 데크
자, 시례호박소 올라가 봅니다. 조금 부지런을 떨어 일찍 왔더니 아무도 밟지 않은 그야말로 순백의 눈길을 밟으며 폭포로 걸어가는 호사를 누리는 군요. 강원도 같은 위쪽 지역에 눈이 많이 내리더라도 하나 아쉬운 점은 유명 계곡이 겨울 기간 내내 폭포는 물론 계곡물이 거의 다 얼어붙어 있다는 점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뽐낸 계곡의 아름다운 정취를 겨울에는 찾을 수가 없거든요. 반면 경남의 유명 폭포와 계곡은 겨울에 쉽게 얼지 않아서 눈 내릴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동영상에는 시례호박소로 올라가며 물소리, 눈 밟는 소리, 폭포 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길 바랍니다.
눈 내린 시례호박소
눈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시례호박소입니다. 백옥 같은 화강암이 업겁의 세월 동안 물에 씻겨 소를 이뤘는데 그 모양의 절구의 호박같이 생겨 호박소라 이름 붙은 곳. 눈 오는 날 이렇게 찾으니 화강암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백옥 같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매년 겨울이면 꼭 한번은 찾아서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울산의 지인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울산은 지금 비가 많이 오는데 어디가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냐, 며 항상 질문을 받는다지요. 지금 가지산에는 펑펑 눈이 내린다는 답변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저 역시 집에서 30분 정도 떠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겨울 왕국을 만나다는 것이 조금은 믿기지 않을 때도 있기는 합니다. 그 만큼 극적으로 날씨가 변하는 곳이 영남 알프스인거지요. 밀양이나 양산 도심에 겨울비가 내린다면 영남 알프스를 눈이 내릴 지도 모릅니다. 경남에서 조금 색다른 겨울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영남알프스를 기억해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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