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사회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전환하자 터져 나온 이태원 발 집단 감염 사태 이후 코로나 19 전파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지역사회 전파가 수도권의 다중이용시설을 중심으로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기본 방역 수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는 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중이 이용하는 실내 공간은 물론이고 유명 야외 여행지조차 맘 편히 방문하기가 조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유명 여행지보다는 평소 가보지 싶었으나 미쳐 방문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덜한 장소를 찾는 요즘입니다. 유명 장소라 하더라도 인파를 피하기 위해서 조금 색다르게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오늘은 조금 다른 통도사 풍경을 만나 볼까 합니다.
통도사 입구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올라 통도사를 내려다보며 장경각. 서운암 방향으로 하산한다
경(經과) 논(論)이 뛰어난 논사(論師)라기보다 율(律) 뛰어난 율사로 이름 떨친 자장율사(590~658)가 계율근본도량로서 창건한 곳이 바로 통도사입니다.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 - 계단은 본래 수계 의식을 집행하던 장소인데, 통도사는 여기에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금강, 즉 다이아몬드와 같이 계율을 굳고 엄격히 지키라는 의미를 더했다 - 을 쌓아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받아들여 계를 주었습니다. 즉, 통도사 창건이란 자장율사의 피나는 구법(求法) 노력의 결과이자 철저한 자장 스님의 계율정신이 내재되어 있는 사찰입니다. 이러한 통도사는 지금도 우리나라 삼보 사찰 - 삼보三寶는 글자 그대로 세 가지 보배라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 삼보사찰은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셋을 가리킨다 - 중 하나로 한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유서가 깊고 규모면에서도 큰 절인 통도사의 전체 모습은 막상 가까이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통도사의 전경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장소로는 통도사 남동쪽에 위치한 봉화산 능선입니다. 산도 높지 않은 데다가 오르기도 편한 곳이라 등산객에서는 잘 알려진 곳이지만 통도사를 찾는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봉화산 방향으로 올라 산을 따라 걸으면서 통도사를 감상하고 장경각, 서운암 방향으로 하산하며 만난 풍경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통도사 입구 '영취산문'
통도사 입구에서 양산천 방향으로 좌히전 하여 내려간다(네이버 지도 거리뷰 화면
계천을 건너 영모정 옆 산길 방향으로 오른다
산악회 리본이 달린 펜스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로 오르게 된다
이곳이 처음이라면 산행 들머리 찾기가 조금 까다로운 편인데요. 우선 통도사 매표에서 좌회전하여 양산천 방향으로 향합니다. 다음으로 돌다리로 양산천을 건너 영모정 옆 산길 방향으로 진입하면 됩니다. 이후 50m 정도 걷다 보면 산악회 리본이 달린 펜스가 나오고 이 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들게 됩니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지만 길 대부분이 나무로 가린 그늘 길이라 걷기에 편안하다
봉화봉이 483m, 늪재봉이 559m로 그리 높지 않고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지만 산길 대부분이 나무로 가린 숲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는 점이 오늘 산행 코스가 걷기에 참 좋은 점입니다. 초보자도 그리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습니다.
20분 정도 오르면 우측에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
합장바위
쉬엄쉬엄 20분 정도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탁 트인 공간이 나오는데요. 오늘 산행에서 풍경이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합장바위'라 불리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하나만을 위해서 많은 이가 오를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합장바위에서 바라 본 통도사 전경
눈 내린 통도사 풍경
저 역시 통도사에 들르면 늘 찾는 장소이기도 한데요. 특히 눈 내리는 날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습니다. 하지만 눈이 없더라도 이곳에 서게 되면 절로 두 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아 합장하게 만드는, 왜 이곳을 합장바위로 일컫는지 알게 되는 장소입니다.
10분 정도 걸으면 다시 한 번 열린 공간이 나온다
두 번째 열린 공간에서 바라본 영축산과 통도사 전경
이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다시 한 번 탁 트인 공간이 나옵니다. 이곳 역시 풍경이 일품인데요. 통도사 전경만을 감상하거나 체력적으로 이후의 산행이 부담스러운 이라면 이곳에서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도 되겠습니다.
40분 정도 진행하면 양쪽 모두 선명한 갈림길이 나온다
이후 길은 어렵지 않지만 조금 지루하게 산길이 계속 이어지는데요. 40분 정도 걷다 보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판단이 안될 정도로 양쪽 길 모두 선명한 갈림길이 나옵니다. 좌측은 봉화산 정상으로, 우측은 봉화봉을 거치지 않고 바로 늪재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두 길은 나중에 다시 합류하는데요. 오늘 저는 봉화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우측으로 향합니다.
안부삼거리에서는 좌측 봉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여 우측 늪재봉으로 이어진다
늪재봉으로 향한 지름길은 20분 정도 후면 안부삼거리에서 봉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다시 합류하여 늪재봉으로 향하게 됩니다. 산행 내내 특별한 이정표는 없지만 들머리부터 늪재봉까지는 선명한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는 코스라 크게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늪재봉
늪재봉에서 2분 정도 걷다 만나는 오늘의 중요 갈림길 - 우측이 장경각과 서운암 방향이다
15분 정도 오르다 보면 오늘 가장 높은 장소인 늪재봉(559m)에 도착을 합니다. 봉이라고 하지만 우뚝 솟은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숲에 가린 소박한 곳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오늘의 중요 갈림길이 나옵니다. 직진 방향은 오룡산, 영축산으로 향하는 길이고 우측이 오늘의 목적지인 장경각과 서운암으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장경각까지 계속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숲길을 벗어나면 장경각이 나온다
서운암 뒤편에 위치한 장경각
이후부터는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25분 정도 내려오면 드디어 숲길이 끝이 나고 장경각이 나옵니다. 서운암 뒤편에 위치한 장경각은 흙을 구운 도자기 판에 대장경을 새긴 '16만 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장소입니다.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인 목판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16만 도자기판에 새긴 것입니다.
장경각 내부
통도사 암자 중에서 최고의 전망을 가진 장경각 야외 쉼터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서운암 뒤편에 위치했음에도 서운암은 찾은 이들에게도 잘 안 알려진 장경각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통도사를 찾은 이라면 꼭 한 번은 방문하기를 권하는 장소입니다. 장경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개인적으로 통도사에 위치한 모든 암자 중에서 단연 최고의 전망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야외 쉼터에서 최고의 전망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이곳 장경각입니다.
장경각에서 서운암으로 내려가는 오솔길
거기에 서운암과 장경각을 잇는 숲길은 봄이면 야생화가 지천이라 서운암을 방문한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서운암에서 도보로 장경각을 오르길 권합니다. 차로 장경각을 오르면 들에 피어난 대부분 야생화를 스쳐 지나게만 되는 거지요.
서운암 장독대에서 만난 올해 마지막 금능화
장경각 주위로 야생화(샤스타데이지)가 한창이다(5월 23일 모습)
서운암으로 내려가면서 만난 작약
보통 서운암 야생화로 4월 초부터 피는 금능화가 유명합니다. 2,3월 통도사 매화와 더불어 많은 사진가들이 서운암을 찾게 하는 시기인데요. 사실 금능화 이후에도 다양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4월 금낭화와 황매화부터 5월에는 불두화, 작약 그리고 6월에는 들국화(샤스타데이지)등 다양한 야생화가 계속 이어집니다.
서운암 장독대
서운암
찔레꽃 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서운암입니다.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서운암은 사진가들에는 길게 줄지은 장독대와 금낭화로, 일반인들에게는 맛이 뛰어난 서운암 된장으로, 여행객들에게는 염색 축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나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서운암 자체적으로 근래에 잊혀가는 야생화 1백여 종, 수 만 송이를 서운암 주변 5만여 평 야산에 심어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하였고 사라졌던 우리나라 천연 염색법인 ‘쪽염색기법’을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을 재현하였습니다. 게다가 생약재를 첨가한 전통 약된장과 간장 역시 이곳에서 개발한 것이지요. 이런 노력 덕분에 오늘날 통도사 열아홉 암자를 대표하는 암자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다 계획이 있던 겁니다'.
이렇게 서운암을 끝으로 조금 다른 통도사 도보 여행을 마쳤는데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개인 간 거리 두기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요즘이지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는 말이 있듯이 당분간 이어질 코로나 19의 범유행 속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장소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곳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갖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통도사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 양산 봉화봉, 늪재봉 산행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