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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예술가 아닌 듯 예술가인 '작가경찰'

이임춘(52·경위) 거제경찰서 남부치안센터장은 경찰관이자 미술작가다. 일상에서는 거제 어촌마을 치안을 책임진다. 그러다 경찰 제복을 벗는 순간 미술작가로 변신한다. 그의 수상한 이중생활(?)을 들여다봤다.

거제경찰서 남부치안센터는 남부면 다대리 어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근무자는 이 센터장 혼자다. 차로 10~15분 거리에 있는 '바람의 언덕', '해금강', 명사해수욕장 같은 유명 관광지가 그의 관할 구역이다. 피서지가 많다 보니 여름철 가장 바쁠 수밖에 없다. 오전 9시 출근해 이곳저곳 순찰하고, 신고 현장에 나가면 '나 홀로 근무'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하루가 지난다.

그는 고성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줄곧 고향에서 지냈다. 할아버지·아버지는 전통 대바구니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는 대나무를 놀이기구 삼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7살 때 아버지와 함께 대나무밭에 갔습니다. 맑은 하늘에 비가 떨어지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속에서 대나무 잎이 휘날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 느낌을 그림으로 옮겨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더랬죠."

도민일보20160831이임춘거제남부치안센터장1이임춘 거제경찰서 남부치안센터장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에 대한 꿈틀거림은 온몸으로 터져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에 대한 인식도 무감각해졌다. 토목 쪽으로 공부하면 돈벌이가 수월하다는 형들 말에 경상대 토목학과에 들어갔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대신 중국어를 부전공으로 신청했다. 대만으로 유학을 떠나 2년 정도 동양사상을 공부했다.

이때 중국어 관광통역원·관광종사원 자격증을 땄다. 대학 졸업 후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평생직장을 찾다 눈에 들어온 경찰 순경 공채에 응시, 30살 나이에 합격했다.

이 치안센터장은 경찰 생활을 하던 30대 중반에 끓어오르는 예술 DNA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삶이 좀 지쳐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삶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어릴 때 앉았다 하면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다시 해보자는 생각에 무턱대고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 그랬더니 어릴 때 그 시골길을 걷는 듯한 편안함이 온몸에 밀려들었습니다. '이게 정말 내 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민일보20160831이임춘거제남부치안센터장2이임춘(52·경위) 거제경찰서 남부치안센터장은 경찰관이자 미술작가다. 거제 개인 작업실 외벽에 새겨놓은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

한동안 취미로 계속 그림을 이어갔다.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을 듣다 보니 욕심이 났다. 거제 집에 아예 작업실을 마련하고 전문 작가로 나섰다. 특히 대나무공예를 현대미술로 승화한 '테어링 아트(tearing art)'라는 새 장르를 개척해나갔다.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대중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국외에서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11년 터키 이스탄불, 2012년 미국에서 초대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현재 페이스북 친구 5000명 가운데 4000명이 외국인이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프랑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미술 수집가이기도 해요. 우연히 아트 딜러를 통해 제 작품 도록을 본 거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경찰관이라고 하니까 더더욱 놀랐나 봐요. 그물망처럼 복잡한 삶의 고뇌를 표현한 작품 '인생'을 매입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죠. 지난 7월 고가의 대금을 부쳐왔더군요. 제가 알고 보면 숨은 애국자입니다. 하하하."

경찰관과 미술작가, 두 가지 모습으로 살아온 지도 벌써 15년이다. 경찰 경험이 작품 활동에서 큰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거제 장승포에 순찰 나갔을 때입니다. 봄날이었는데 저쪽에서 망아지 같은 물체가 웅크려 꽃을 먹고 있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옷을 모두 벗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니 '바람난 남편한테 쫓겨났는데 배가 너무 고파 꽃을 먹었다'는 겁니다. 이 기억이 저에게는 너무 충격적으로 남아 '꽃을 먹는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에 담았습니다. 경찰 생활하면서 접한 여러 인간 군상을 작품에 많이 녹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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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아닌 듯 예술가인 '작가경찰'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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