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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시 혹은 동네의 기억

가끔씩 난 아무 일도 아닌데 괜스레 짜증이 날 땐 생각해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 
내가 걷는 거리 거리 거리마다 나를 믿어왔고 내가 믿어가야만 하는 사람들 / 
그리고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내가 처음 만난 곳 /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 곳 /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소중했던 기억들이 감춰진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위는 1989년에 발매된 가수 김현철의 1집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동네’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이 곡은 스무 살이 된 한 소년이 어느 날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동네를 거닐다 그 해 들어 처음 내린 비를 맞는 순간 그를 둘러싼 공간과 주변의 분위기를 일종의 데자뷰처럼 느끼고, 동네와 얽혀있던 자신의 가슴 설레는 과거 기억들이 노스탤지어처럼 갑작스레 떠오르게 되는 묘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문 순간, 그 맛과 향기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에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고 그 데자뷰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최근에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이 노래와 관련된 1990년대 저의 사춘기 시절 달콤 쌉쌀음 했던 추억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어느 날 저와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친구 한 명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공동체라는 의미가 조금씩 퇴색·변화되어 감에 따라 현대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다 보니, 삼십 년 이상을 같은 동네에 살았음에도 그 친구가 같은 동네, 그것도 제가 즐겨 지나다니는 골목길에서 제가 항상 눈여겨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주 후에 다른 동네로 이사 가게 된다는 사실 또한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이사 가게 되면 뭐가 제일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냐고 물어보니, 다소 의외의 대답을 그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절친의 집이 있는데, 난 그 친구의 집이 위치해 있는 골목의 모서리를 돌아 들어서는 그 순간(들)이 아주 그리울 거야”.

 동네 구멍가게,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동네 골목·놀이터 등 동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인 건물·장소가 아닌,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다소 볼품없어 보이는 수많은 동네 골목들 중 하나의 이름 모를 모서리를 돌아 친구 집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이 매우 그리울 것이라는 그 친구의 대답에서 많은 것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소만은 기억이 나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씨이익 웃고 있는 ‘체셔 캣(Cheshire Cat)’처럼 존재하지만 동시에 희발성이 너무 강해 바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기억 혹은 순간과 같은 ‘묘’한 느낌과 동시에, 그 골목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도 기억도 그리고 결국은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거라는 친구의 아쉬움 또한 말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공간 혹은 도시’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 묻어난 다양한 이야기, 그들이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 그리고 그런 수많은 동네들이 촘촘히 모여 각자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존해 나가는 도시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그곳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행복’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특정 장소·공간(들)에 대한 원거주민들의 과거 및 현재의 기억과 망각을 부추기는 도시 재개발·재생으로 인해 그들의 동네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들도 기억들도 그리고 그들 자신도 점점 사라지게 되고, 결국 그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네’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세대별로 경험했던 ‘동네’의 모습과 그곳에서 형성된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동네의 본질을 전원적인 마을이거나,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주민들 간의 정감 있는 소통이 가능했던 1980년대 당시 작은 마을공동체의 모습에서 찾는다면, 다른 이들은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 식의 좀 더 폐쇄적이고 개인화된 모습과도 연관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터무니 있는’ 동네의 기억 : ‘터무니 있는’ 인간·사회의 기억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위의 말은 전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의회 의사당의 재건을 약속하며 행한 연설의 한 부분으로, 건축의 본질, 즉 건축이 우리 인간의 삶을 조직·디자인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승효상, 2016, p. 121).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들어낸 건축물에서 거주하면서 우리의 삶과 정체성도 이 건축물의 공간구조에 맞춰 자연스레 형성·진화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건축물들이 한데 모여있는 도시를 만든 주체 또한 우리 인간이며, 그런 도시가 결국 인간의 삶, 그리고 그런 삶들이 서로 다양한 관계를 이루며 자연스레 형성된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분별한 도시계획·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공간의 고급화 현상, 다시 말해 재개발된 도심 주거지에 중·상류층이 몰려들면서 땅값과 집값이 올라 가난한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되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되는 급격한 도시화, 사회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21세기의 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네’ 그리고 ‘좋은 이웃’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회는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이 도시 재개발로 인해 철거가 되면서 이 동네를 살았던 등장인물들의 기억들 또한 함께 사라지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올림픽 개최도시인 서울의 미관 및 국가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1987년에 강제 철거되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서울 상계동의 무허가 판자촌 강체철거 장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좋은 건축가·도시계획가 그리고 좋은 건축·도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 좋은 건축가, 좋은 도시계획가는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이며 좋은 건축, 좋은 도시란 그 터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 지난 시절의 무늬와 함께 그 결이 더욱 깊어 가는 곳일 게다. 그게 터무니 있는 건축이며 그러함으로 터무니 있는 삶이 생겨난다”(ibid., p. 75). 

그렇기에, 다양한 시간·기억의 결을 머금고 있는 건축,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과 건축이 한데 모여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끊임없이 교감해가며 자연스레 형성된 동네라는 ‘기억과 관계의 공동체’는 ‘팰림세스트(palimpsest: 과거의 텍스트 자국 이미지가 남아있는 양피지)’처럼 수많은 과거·현재의 기억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서로 끊임없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종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것입니다. 

건축의 곡선·굴곡은 얼굴의 미소·주름살과 같습니다. 얼굴에 주름살로 미소를 드리우듯이, 건축은 굴곡진 곡선으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미소가 좋은 사람들에게 더욱더 다가가기 편하듯이, 곡선으로 자연스레 굴곡진 건축 그리고 이런 건축들로 이루어진 동네와 실핏줄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골목들이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편하고 아늑하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랜만에 여러분의 동네를 한번 거닐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바쁜 일상에 지쳐 그냥 놓쳤을지도 모를 여러분의 잃어버린 젊은 날의 기억·흔적들을 찾아서 말이죠. 

[참고문헌] 

▪ 승효상, 2016,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파주.

 

경남이야기 칼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이홍렬

 

 

*경남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경남이야기 칼럼'의 내용은 <경남이야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도시 혹은 동네의 기억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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