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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재미있는 경제론

연일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모두가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다. 듣고 보는 일들 대부분이 치솟는 실업률이라든가 경기 침체 그리고 주부들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는, 천정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장바구니 물가 등 부정적인 경제소식이 목을 조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워낙 다양하여 오히려 헛갈리기만 한다. 경제학자, 경제 평론가 그리고 정부의 경제 관료 등 수많은 명사가 다투어 의견을 펼치며 통계숫자를 열거하고 전문용어를 구사한다. 이중구조론, 산업유통론, 신자유주의, 신브레튼우즈 체제 등을 전개시킨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것을 정치논리로 풀었기 때문에 파국을 초래했다고도 진단한다. 매우 학술적이다. 설득력 있게도 들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새롭게 터득한 지식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알던 것마저 모르게 된 것도 있다.
경제 전문가의 예측은 적중하지 않는다. 환율, 경제성장률, 실업률, 물가지수, 어느 것 하나 최근 4개월 사이에 맞아 떨어진 것이 없다. 물론 세계가 경제 파국으로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경제동향을 예상하는 것은 힘 드는 일이다. 정책 당국자는, 불안하고 당황할 만큼 우리 경제 구조가 허술하지 않다고 했다가 위기라고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는 경기를 회복하고 실업율을 낮추는데 1년 이상 또는 3년, 그보다 더 길게 예측하기도 한다. 도무지 갈필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정부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념해야 할 것은 분명하게 단념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참으로 단념할 줄 아는 자만이 참으로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릇된 기상예보가 등반대원과 항해 인에게 조난의 화를 입히듯이 있으나마나 한, 그보다는 없는 편이 나은 경제 예보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경제에는 캄캄한 문외한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히는 책이 있다. 존 K.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지난 2백 년에 걸친 경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경제사상사를 각 시대의 역사와 관련지어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경제를 말하고 있는데 경제가 아닌 무슨 이야기책처럼 독자를 사로잡는다. 마르크스가 죽은 해에 케인즈가 태어났다. 케인즈는 발레리나와 결혼했다. 그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의 재앙은 처음에는 혀끝을, 나중에는 사상을 자신의 공적 입장에 순응시킨다는 것이다. 그 지위에 있게 되면 자기 형편에 좋은 말만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다.’는 말로 변화의 주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도박의 유행은 부자의 현시욕에서 비롯된다거나 영국의 삼림은 산업 혁명 이전에 연료로 거의 소진되었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한 가지 원인이었다. 등 흥미진진한 화제가 가득하다. 경제론에는 당연히 정치, 문화, 과학기술, 패션, 국민성, 풍토, 지리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오랜 세월을 지나치게 정치에만 열중해 왔다. 몇 백 년 전 왕조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정치를 거듭거듭 글로 쓰고 라디오와 TV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현하고 있다. 실로 기형적인 현상이다.
이제 좀 더 경제를 이해하고 이야기해야 하겠다. 당면한 난국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경제는 더욱 절박한 문제로 덮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학이 아니다. 살아있는 경제, 그 자체이다. 높은 곳에서 저만치 아래를 내려다보며 설교하는 듯한 이론보다는 뒷골목과 변두리의 서민이 갖가지 애환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경제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곤충학자와 같은 세밀한 눈이 요구된다. 시인과 같은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면 한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으로서 알기 쉽고 이로운 경제론을 만나고 싶다.

이종화

재미있는 경제론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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