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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탐방

[체험&탐방]함양 개평마을 자갈한과 … 돌에 굽는 '웰빙 한과'

 


먹을 거 천지인 세상, 달달한 맛으로 명절 분위기를 돋우던 한과는 차례상 구색 맞추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밀려드는 주문을 다 받지 못해 ‘미안한’ 한과가 있다. 주인공은 ‘자갈한과’란 별명을 달고 인기 고공 행진 중인 함양 개평마을에 살고 있다. 설을 앞두고 한과 만들기에 눈코 뜰 새 없는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을 찾았다.

 

뜨거운 돌멩이에 묻어서 굽는다

“와, 이게 뭐예요? 이런 화덕 처음 봐요!”

한과 굽는 화덕을 본 순간, 저절로 나온 말이다. 놀라는 기자의 기색에 개평마을회관 한과작업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신기하다고 사진들 많이 찍어가대요. 별거 아닌데.”

개평마을 전통한과 작업반을 이끌고 있는 마을부녀회장 이효선(61) 씨가 웃으며 건네는 말이다.

‘별거’ 아니라는 화덕은 한옥 부엌의 아궁이와 비슷하지만, 덩치가 좀 더 커서 피자 가게의 화덕을 떠올리게 한다. 화덕 위에 걸쳐진 솥단지, 정확하게 말하면 솥뚜껑에 자꾸 눈이 간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솥뚜껑 위에서 뜨겁게 익고 있는 것의 정체 때문이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콩알만 한 돌멩이들. 무쇠 솥뚜껑을 팬 삼아 돌이 익어간다.

“잘 보시라”는 부녀회장님의 말에 따라 돌 굽는 솥뚜껑을 내려다보던 취재진은 또 한 번 “와!” 탄성을 질렀다. 주걱으로 돌을 뒤적거리자 하얀 물체가 부풀어 오르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한과 반대 기다.

갓 구워낸 반대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달달한 조청에 담갔다 튀밥가루 옷을 입으면 고소함에 단맛을 더한 ‘자갈한과’가 완성된다.

 


 

식용유 귀하던 그때 그 시절 방식

돌에 굽는 한과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오점덕(67) 씨다. 2005년에 시작했다. 당시 지곡면 면장이던 홍경태 씨가 “개평마을이 한옥마을로 유명한데, 전통먹거리가 있으면 더 좋겠다. 전통방식대로 돌에 굽는 한과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 돌에 한과 굽는 것을 본 적 있는 오 씨가 기억을 되살려 재현해냈다.

“예전에 식용유가 귀하던 시절 방법이지요. 기름 없이 익히려고 달군 돌에 한과를 구웠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하던 것을 떠올리며 해봤어요. 지금처럼 제대로 만들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지요.”

쓸 만한 돌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만만찮게 정성이 든다. 하천에서 맞춤한 돌을 주워 씻은 후 소금을 넣어 볶는다. 소금은 천연소독제 역할을 한다. 볶은 후에는 뜨거운 물에 헹궈서 말린다.

‘바탕’이라고 하는 한과 반죽도 재료별 비율 맞추기가 쉽지 않다. 찹쌀가루와 콩가루에 천연발효제로 막걸리를 섞는다. 오 씨에게 배합비율을 물었더니, “마을 비밀이라 못 가르쳐 준다”면서 웃는다. ‘마을 비밀’은 또 있다. 반죽 후 반대기를 만들어 건조기에서 말리는데, 몇 도에서 몇 시간을 말리는지도 중요하단다.

화덕에 붙어 앉아 반대기를 굽는 일도 보통일은 아니다. 장작불을 때서 굽다 보니 매캐한 냄새와 연기에 늘 눈이 따갑다고 한다. 그래도 탈까 봐 자리를 뜨지 못한다. 한 번에 뒤집어 굽는 것이 아니라 다섯 번 정도 뒤집어 돌무더기에 묻었다 꺼내기를 반복한다.

 

꼬박 3일 걸리는 수제 한과

한과 작업반은 개평마을부녀회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맡은 공정에 따라 단계별로 모둠을 지어 일한다. 오점덕(67), 지순례(74), 이복달(70), 하분희(73) 씨는 화덕 가에 둘러앉아 반대기를 굽는다. 김복실(77) 씨와 임정숙(71) 씨는 구워진 반대기를 깨끗하게 털고 다듬는다. 황갑연(75) 씨는 조청을 묻히는 과정을 담당한다. 이효선 회장은 튀밥 가루를 입혀 마지막 처리를 한다.

간단할 것 같은데, 실제 한과 만들기는 3일이 걸린다. 반죽하고 반대기 만들어 건조하기, 조청 끓이기, 튀밥 가루 준비하기 등 재료 준비하는 데 꼬박 하루가 든다. 굽고 완성하는 과정이 하루, 바삭하게 말려서 포장하는 데 또 하루가 걸린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굽는 방식을 쓴다고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많아졌다. 설날 가족과 나누는 양보다 조금 더 만들자던 부녀회원들은 이제 설 아래 두 달을 꼬박 한과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적어도 사흘이 걸리는 일이거든요. 하루 8시간씩 일을 해도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문전화를 주셔도 보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붙었어요.”

연신 걸려오는 주문전화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부녀회장은 “이 정도도 언젠가는 못 만들 것 같다”면서 한숨을 쉰다. 사람이 없단다. 젊은 사람은 고사하고 마을에 사람이 없어서 그렇단다. 조청 솥 앞에서 작업 중이던 황갑연 씨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가 다 늙어서 그래요. 더 만들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퇴직하고 이리 오실랍니까? 한과 만들게.”

 

“이번 겨울 주문은 끝, 내년 설에 봐요”

이 회장에 따르면 주문량이 늘면서 작업장을 확대하고 마을사업으로 키워볼까 하는 구상도 해봤단다. 그러나 겨울 농한기 한 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 포기했다.

“우리가 다 농사를 짓거든요. 농사일 하면서 한과를 만들 수는 없어요. 한과 특성상 겨울 외에는 제맛을 내기도 어렵고요.”

추수가 끝나고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과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설 대목이 다가오면 주문이 폭주한다. 웰빙 간식으로 알려져 환자를 둔 가정에서도 특히 많이 찾는다. 올해는 1월 초부터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할 정도가 됐다. 주문 못 받는다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어 난감하다고 한다. 짓궂은 취재진이 즉석 구입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안 된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주문하고 받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밤샘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란다.

“한정된 인원으로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원하는 분들께 다 보내드리지 못해요. 제발 우리 사정 좀 알려주세요.”

개평마을 전통한과는 1kg 한 박스에 4만5000원이다. 재료는 모두 마을 주민들의 농산물을 사용한다. 이제 올해는 오는 11월이나 돼야 맛볼 수 있을 예정이다. 아쉽지만, 사진으로나마 개평마을 자갈한과를 즐겨주시길 바란다. 

문의  개평마을회관 ☎055)963-9645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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