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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특집·기획]공간혁신의 현장을 가다 - 사천 용남중

지난 25일 아침, 사천 용남중학교. 김예빈(16), 홍은주(16), 이소은(16) 졸업반 세 친구가 교문으로 들어선다. 학교에 불이 났습니까. 아침부터 웃게라는 시구처럼 학교 가기가 그렇게 싫다는 아이들과는 달리 깔깔웃음이 끊어지지 않는다.

왜 그리 좋으냐 물었다. “그냥요.”

10대의 그냥은 사실 백과사전이다. 공간혁신으로 이름난 이 학교의 비밀도 그들의 그냥속에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안했다. 10분 안에 학교를 둘러본다면? “, 교무실, 지혜샘, 채움뜰, 벽화요.” 교무실이라니! 불려가 혼나던 그 교무실! 어쨌든 3년을 이곳에서 보낸 친구들의 말이니 그냥따라가 보기로 했다.

 

교무실에서 놀아요

교무실 가는 길은 은주가 앞장섰다. 선생님과 터놓고 얘기하는 선수란다.

자동출입문에서 가까운 배진호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갔다. 하이파이브로 손바닥 인사를 하더니 또 깔깔거린다. 친구가 따로 없다. 배 선생님은 음료수를 건네준다.

혼자 먹으면 맛이 없어요!”

저 끝 선생님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칸막이가 없다. 벽돌로 감싼 기둥, 색감 있는 바닥과 조명 등 카페가 따로 없다. “그냥 교무실에 가서 놀아요. 선생님 간식도 빼앗아 먹고 상담도 하고, 학교에 적응하는 데 교무실이 큰 역할을 하죠.”

학교 자랑거리에 교무실은 반드시 3위 안에 든다는 말에서 그냥의 의문하나가 풀렸다.

 

독서·창작·예능이 샘솟는 지혜샘

지혜샘(도서관)으로 이동하면서 예빈이가 고백을 한다. “사실 1,2학년 때는 도서관 근처에도 안 갔어요. 그런데 작년 지혜샘이 생긴 뒤부터는 주말에도 가요. 공부도 하고 책도 빌리고, 뭐 부산의 대형서점이 부럽지 않아요.”

지혜샘은 독서와 창작, 예능이 동시에 가능한 복층 구조이다. 안이 훤히 보이는 인테리어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재능기부로 채워졌다. “세 글자로 지으면 부르기도 좋고 친근감이 생기잖아요. 지혜가 샘솟는 카페라는 소은이의 어깨가 올라간다.

도서위원인 은주가 여기서 열린 독서골든벨, 북콘서트, 작가와의 만남등을 줄줄 풀어냈다. 지혜샘은 늘 북적이는 인기만점이란다. “여기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보이는 벽을 없애면 보이지 않는 벽도 사라진다.

아이들의 얘기에 늘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교무실에서 사라진 칸막이처럼 선생님과의 벽도 없단다. ‘선생님을 이겨라선생님TMI’퀴즈를 예로 들었다. ‘가위바위보참참참으로 선생님을 이기면 뿅망치를 선물(?)한다. 선생님들이 적어낸 신변잡기(화장실 가는 횟수 등)로 퀴즈놀이를 즐기다 보니 벽이 사라졌단다.

1,2학년과도 터놓고 지내고 남녀공학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며 자랑했다. ‘따문화’, 집단따돌림도 생길 환경이 아니란다. 심지어 전학생들도 하루면 절친이 된다 한다. “우리 학교에 벽은 교실벽뿐이에요.”

보이는 벽을 없앴더니 보이지 않는 벽도 사라지는 신기한 공간, 사천 용남중이 그런 곳이다. 필자도 그들의 그냥에 빠져들고 있었다.

 


채움뜰에서 공유경제를 배운다

채움뜰로 들어가려던 아이들이 평소에 입장 모습을 보여주겠단다. 그러더니 앞다투어 뛰어 들어갔다. 너무 좋아서 그런단다. 지난해 예빈이와 은주는 이곳에서 노래 솜씨를 뽐냈다. 수요일 점심시간이면 채움뜰은 누군가의 끼로 채워진다. 일 년 일정이 넘쳐 하루 2팀이 공연한 적도 있다.

폴딩도어를 열어젖히면 안과 밖 모두 무대가 된다. 춤과 노래는 기본이다. 선생님도 버스킹 무대에 오른다. 오케스트라 등 34개의 동아리도 더 활기가 넘친다.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소은이도 채움뜰은 우리 학교는 달라요를 외치게 된 이유가 됐다. 열린 공간을 나눠 쓰고 함께 채워가는 아이들은 벌써 공유경제를 체험하고 있다.


천장을 높이면 에너지가 넘쳐요

아이들이 이 학교의 유일한 벽이라던 곳도 그냥 벽이 아니었다. 복도 벽면은 교장선생님까지 합세한 공동 작품으로 가득했다.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알록달록하다. 교실 천장도 속이 다 드러나 있다. 복도 끝에는 세면대와 휴식공간이 설치돼 있다. 2번째 교무실은 아예 아이들 곁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그리고 익숙해졌어요. 색깔이 더해졌고 막힌 것을 틔웠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지나 싶었어요. 그러니까 뭐든지 해보고 싶은 거예요!” ‘뭐든지라는 말에 인사가 생각났다. 아이들은 정말 살갑게 반겨준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에요. 에너지가 넘치니까 그냥 인사도 막 하고 싶은 거죠.”

아이들은 알고 있다

다른 학교는 왜 용남중처럼 변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세 친구들에게는 곧 닥칠 현실이기도 했다.

예산 문제이긴 하겠지만 어른들의 생각부터 바꾸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소은이는 소통공간’, 은주는 교무실1순위라 했다. “바뀐 교무실의 수혜자는 사실 학교 전체라는 혜빈이는 졸업 이후를 걱정했다.

공간혁신이라는 말이 너무 강해서 다 고쳐야 할 것 같다면 그냥 채움뜰을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채움뜰은 결국 아이들의 빈 마음까지 채워주었던 셈이다.

 

용남중의 공간혁신은 생존전략이었다

지난 2011년 용남중은 학생 수 급감으로 개교 60년 만에 폐교 위기에 내몰렸다. 당시 전교생은 6학급 124. 그런데 올해는 신입생을 포함해 24학급에 600명을 넘었다. 5배로 늘었다. 이웃 공립학교와의 형평성 탓에 신입생을 줄이고도 이 정도다.

다른 학교에 없는 미래교육부가 있습니다라는 최연진 부장(과학) 교사가 비법을 소개했다. 당시 동창회가 스쿨버스를 지원하며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학교와 법인은 다 바꾼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쳤다.

2014년 교육부는 용남중을 농어촌거점별 우수중학교로 선정하며 3년간 12억 원을 지원했다. 사천시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공간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학교공간의 변화! 환경이 바뀌면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온통 하얀색이던 학교에 다양한 색감을 입혔다. 가시적 변화에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천장을 30cm 높이면 창의력이 2배로 는다고 믿고 교실 천장은 틔우고 철골은 노출시켰다. 색과 조명으로 마무리를 했다. 틀에 박힌 사각교실을 보완하려던 아이디어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채움뜰과 지혜샘을 신축하니 그저 네모진 빈터에 불과했던 학교 마당에는 5개의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공간혁신은 공간의 재구성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학교마당에 안개분사기를 설치했더니 미세먼지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이들을 가둬 버린 닫힌 공간도 함께 사라졌다.

놀이와 교육의 경계가 사라지니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의 문제가 결국 공간의 문제라는 체험학습의 현장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한편 교육부와 경상남도, 경남도교육청이 지난 2월 사천 용남중에서 가지려던 미래교육한마당 행사는 코로나19’ 탓에 무기한 연기됐다.

 

·사진 최석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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