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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슈]“민주주의는 보살펴야 하는 나무와 같아”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최갑순 회장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부마민주항쟁. 우리나라 4대 민주항쟁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빠져 있던 부마민주항쟁이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정부 차원의 첫 기념식이 창원에서 열린다.

5·186·10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받는 부마민주항쟁의 의미를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최갑순(63·당시 경남대 국어교육학과 3학년) 회장을 통해 들어본다.

 

40주년 의미 새기는 다양한 행사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업회는 1989년 창원(마산)에서 조직된 부마민주항쟁 10주년기념사업회를 계승한 단체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19791016일 부산에 이어 18일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부마민주항쟁의 자유, 민주, 정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됐습니다. 올해가 창립 14주년입니다. 현재 28명의 이사와 150여 명의 회원, 회장, 사무국장, 상근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민 음악제, 영화제 등 다양한 기념사업과 역사기록사업(증언집 발간), 지역 시민사회 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올 10월은 무척 바쁘실 것 같습니다. 최근 야구장에서 시구도 하시던데요.

지난 81일 창원NC파크 마산구장에서 등번호 부마민주 40’유니폼을 입고 시구했어요. 전 국민에게 부마민주항쟁을 알려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지난해 8월 출범한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중심으로 다양한 40주년 기념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업회도 <찾아가는 음악회>, <영화제>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음악회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길마켓 행사장에서 10회 정도, 창원시 통합의미를 살려 마산·창원·진해 지역에서 진행했는데요. 영화제는 민주시민 의식과 자유, 평화, 인권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들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시와 함께하는 역사기록사업(3차 증언집 발간)을 통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사업도 병행합니다. 지난 924일에는 창원시가 주최하는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축하식이 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

부마민주항쟁의 정의를 내리신다면?

박정희 정권의 폭정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 행사입니다. 제대로 된 시위가 없었던 부산, 마산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받는 거대한 항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입니다.

 

최 회장님은 경남대 시위대의 한 축이셨는데 어떤 계기로 앞장서게 됐나요?

여성 노동자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있었어요. 동일방직 노조탄압사건이지요. 저는 두메산골 출신인데, 친구들은 모두 공장에 갔고 대학에 간 여성은 저뿐이었습니다. 급여를 받지 못해 항의하다가 오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유일하게 대학을 다니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는자책감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19798YH무역 사건으로 22살의 여성노동자 김경숙이 사망하고, 10월 초에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유신독재를 비판하다 의원직에서 제명됐어요. 박정희 정권이 도를 넘기 시작했다고 봤지요.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옥정애(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회장) 등과 시위 계획을 세웠습니다. 9월에 하려던 1차는 실패했기에 2차 계획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이선관 시인, 김종대 YMCA 청년회장과 교수님 등 도움이 될 사람들도 만났고 학과대표들도 만나면서 1022일을 D-day로 정했어요. 그런데 부산에서 16일 먼저 시위가 일어나면서 18일로 시위를 앞당기게 됐습니다.

 

울부짖음 피 냄새 진동했던 그날의 기억

마산 시위가 일어났던 1018일과 19일 당시 체험담을 말씀해주세요.

랑 옥정애는 부산시위 소식을 듣고 시내 다방에서 유인물 초안 작업을 했습니다. 그 도중에 경남대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휴교한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곧바로 학교로 가서 흩어진 학우들을 모아 교문까지 나갔습니다. 오후 5시에 3·15의거탑 앞에서 모이자고 선동하다가 교직원에게 들려서 교문 밖으로 쫓겨났어요. 택시를 타고 3·15의거탑으로 갔지요. 버스로 온 학생들과 산복도로를 통해 시내로 나오는 시위대를 마중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옥정애를 다시 만나 시위대를 정렬시키던 중 경찰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갔습니다. 그날 밤 유치장에서 시내 항쟁에 대해 들었어요. 비가 왔는데, 사람들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과 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유치장은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들어차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최갑순은 101817시경 3·15의거탑 옆 산복도로 내리막길에서 시위를 하던 중 체포되었는데 당시 경찰은 최갑순의 원피스를 머리까지 들어 올려 얼굴이 가려지고 속옷이 모두 노출되도록 한 다음 머리채를 잡아당겨 경찰 차량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갔다. 옥정애도 체포과정에서 경찰이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바지를 찢어버리고 속옷이 노출되도록 한 다음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다. (창원지방법원 판결문 ’12.4.4.)

 

머리채를 잡혀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질질 끌려가는 바람에 최갑순과 옥정애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어요. (중략) 여학생 두 명이 그 지경이 되니까 그때부터 남학생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시위가 폭력으로 치달았던 시점이 그때부터였어요. (중략) 맞다가 잔머리를 굴렸어요. 형사들이 너무 아픈 척해도 때리고, 너무 말짱해도 때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당히 아픈 척을 해야 덜 맞는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출처 부마민주항쟁 증언집 마산편」 

 


 

민주항쟁에 뛰어들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으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십니까?

짐승같이 맞으며 취조 받다가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폭행도 당했지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다 잡혀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부산 보안대로 끌려갔다 다시 마산교도소로 왔고 129일 석방됐어요. 그 시기를 겪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연했다면 그 후에는 삶이 분명해졌다고 봅니다.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게 되었고 아는 것만큼 실행하며 살았습니다. ()경남여성회를 결성하는데 참여하고 지방 최초의 성폭력상담소, 여성인권상담소 설립, 낙동강 페놀방류 대책위 활동등을 하면서 저 자신도 치유과정을 거쳤다고 봅니다.

 

이제는 일상에서 실행에 옮기는 민주화

70~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겪지 않은 젊은 층에게 당부하신다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아직 민주화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민감성을 가지고 실행에 옮길 일을 찾아봅시다. 최근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가 유치준(당시 51) 씨를 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했어요. 명예회복에 40년 걸렸죠. 당시 한마음으로 시민항쟁에 참여하신 분들의 기억을 소환하고 부마민주항쟁의 자랑스러운 가치를 그 분들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프로그램

민주대동큰잔치 10.12() 18, 창원 MBC경남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기념식 10.16() 10, 경남대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10.17(), 경남대 창조관 평화홀

청소년 창작뮤지컬 빛날’ 10.18() 1519,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

부마민주음악제 10.29() 1930, 창원 3·15아트센터 대극장

부마민주영화제 11.15()~30() 창원 시네아트리좀, 창원시 소재 일반 상영관

 

 

부마민주항쟁 주요일지

1979.10.15. 부산대 내 민주선언문배포

10.16. 부산대 교내 시위 시작, 부마민주항쟁 발발

10.17. 3~5만 명 참가 대규모 시민항쟁으로 발전

10.18. 0시 부산 일원 비상계엄령 선포. 14시 경남대 유신 철폐시위,

대규모 시민항쟁 39사단 병력 시위진압 투입

10.19. 마산시민 시위대와 군 병력 충돌

10.20. 12시 마산 위수령 발동

10.26. 박정희 대통령 사망

12.12. 전두환 등 군부 쿠데타

1980. 5.18. 5·18민주화운동

2019. 10.16. 첫 국가기념일 지정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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