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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반하다

[사람에 반하다]청년, 팜프라에서 촌 라이프를 꿈꾸다

특집-청년이 온다 ①

 

 

경남 남해의 팜프라는 핫플레이스다. 소위 뜨는 곳이다. 촌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직접 체험을 권유한다. 하지만 귀농을 고집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이촌(移村)이다. 그 이촌으로 가는 길을 팜프라에게 물었다. 특별대담에는 아래 6명이 함께했다.

팜프라측: 유지황(33·대표), 양애진(27·미디어팀장), 오린지(29·출판기록팀장)

체험단측: 이준민(35) 권진영(30) 부부, 권태윤(18) 인턴

 

Q. 팜프라를 소개해 달라.

 

유지황 팜프라는 팜(farm, 농장)과 인프라(infra, 기반)의 합성어다. 도시에서 이주하려는 청년들이 촌() 라이프(life)를 실현하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체험공동체이다. 2018년 양애진 팀장과 둘이서 만들었다. 올해 법인 등록을 했다.

 

양애진 20199월 남해 두모마을에서 팜프라촌 1기를 시작했다. 청년 11명이 105일 동안 촌 라이프를 실험했다. 집 짓기, 농사, 농기구 다루기 등을 직접 체험했다.

 

유 대표 팜프라촌의 시스템은 이촌을 희망하는 청년 300명의 수요조사에 맞췄다. 자본금 없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모델. 농사와 농기계 조작법, 집 짓기 기술, ‘나홀로 이촌의 두려움 극복 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Q. 왜 이촌을 생각했는가?

 

유 대표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인턴을 거쳐 원양어선도 타봤다. 하지만 돈벌이와 상관없이 나만의 삶을 꾸리는 방편은 농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 중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가 1년 만에 쫓겨났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싶어 14개국을 여행하고 2만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 후에 팜프라촌을 기획했다. 빌린 땅에서 4번 쫓겨났고 지자체에서 사업설명회를 5번 했다. 7년 만에 남해에 정착했다.

 

양 팀장 전남 광주 출신인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서울생활이 낯설어 농촌여행을 다니며 관련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러다 유 대표와 페이스북 친구가 됐고 의기투합했다. 1년 넘게 진주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면서 팜프라 창업 멤버가 됐다.

 

오린지 경기도 수원시가 운영하는 청년공간에서 5년 정도 독립출판을 했다. 당시 집 짓기에 관심이 있었다. 팜프라가 기획한 집짓기 프로그램 코부기(이동식주택) 워크숍에 참가한 것이 인연이 됐다. 자연스럽게 팜프라촌 1기에 합류했고 직원이 됐다.

 

권진영 양산에서 나고 자란 영향을 좀 받은 것 같다.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도시의 바쁘고 여유 없는 삶이 싫었다. 지난해 6월 퇴직했다. 팜프라촌 공고를 보고 남편도 퇴직했다. 겁 없이 도전했다. 잘 될 것 같았다.

 

이준민 아내는 늘 시골생활을 동경해왔다. 나는 공무원이었다. 항상 바빠서 아내와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와 식사하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정작 중요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팜프라촌이 우리에게 체험의 장이 됐다.

 

권태윤 충북 제천 간디학교 고3이다. 한 학기 인턴십 과정으로 팜프라에 입주했다. 처음 계기는 인간관계였다. 소통 부재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관계가 활발하고, 즐겁게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제 생각에 답은 공동체였다. 팜프라 촌민들의 사진에서 행복감이 느껴졌다.

 

 

Q. 촌 살이를 받쳐줄 지속적인 기반은?

 

양 팀장 작년에 두모마을 주민들과 시금치 농사를 지었다. 시금치 활용정보를 담은 시금치매거진을 덤으로 팔았더니 시금치만 팔 때보다 8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완판까지 기록하자 어르신들이 놀라워하며 기뻐하시더라. 부족한 농사기술을 아이디어와 소통력으로 채웠다. 올해는 고사리, 마늘 버전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유 대표 시금치처럼 수익모델을 자꾸 만들 계획이다. 자원은 많다. 남해의 특산물과 남해의 이야기, 자연환경, 문화 등은 모두 우리만의 상품이 될 수 있다. 올해는 농촌체험 프로그램, 인건비 지원사업 등 몇 가지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이런 일들은 개인보다 공동체여서 가능한 것 같다.

 

오 팀장 우리 이야기도 상품이 된다. 곧 팜프라촌 1기 기록을 책으로 발간한다. ‘팜프라보고서. 모두 6권의 시리즈다. 지속적으로 매거진과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권태윤 인턴이라 나만의 프로젝트로 영상공부를 하고 있다. 팜프라 촌민 모두 나의 멘토다. 촌 살이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싶다.

 

권진영 하루 4시간 마트 알바를 한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촌 살이에서는 풀타임 일이 아니어도 웬만큼 도움이 된다. 글을 써서 부수입을 올린다. 사무직에만 있었으니 몸을 쓰는 일도 신선하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남해에서 살아보니 어떤가?

 

오 팀장 지금은 만족한다. 적어도 남해에서 3년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유 대표 아쉬운 게 있다면 집이다. 마을의 자연환경은 정말 좋다. 하지만 폐교에 살다보니 불편하다. 사실 진주에 이동식 주택 코부기가 5채나 있다. 현실적인 규제와 자금난 탓에 코부기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돈도 많이 벌고 싶어졌다. 원하는 부지를 사서 10동 정도의 코부기를 설치한 팜프라 공동체를 일구고 싶다.

 

이준민 우리 부부는 귀촌인의 집에 1년 계약을 했다. 집 문제가 해결되면 남해에서 계속 살고 싶다.

 

권진영 다 좋은데 아이를 가지려니 걱정이다. 산부인과가 없다. 육아기를 생각하면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 대표 지금까지 행정기관은 우리에게서 아이디어만 가져가는 정도였다. 사업파트너가 아닌 그저 전화 몇 통화로 자문을 받는 식이었다. 남해군은 좀 달랐다. 직접 찾아오더라. 그래서 남해를 선택했다. 쫓겨다닌 우리를 두모마을은 두말없이 오케이하더라. ‘, 나도 남해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남해군 상주면 양아로 534(두모마을) 팜프라촌 http://www.farmfra.com

 

 

두모마을이 보는 팜프라


손대한(49) 이장

남해군은 1년에 약 300명이 사망하고, 100명 정도가 태어난다. 지금 우리 마을에서 내가 가장 젊다. 10년 후를 생각하면 마을에 살러 오는 젊은이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팜프라는 작년에 판매부진을 겪던 시금치를 시원하게 팔아치웠다. 팜프라가 농사를 거들면서 유통판매까지 맡아 주면 서로 윈윈하는 거다. 나는 유 대표를 차기 이장감으로 점찍 었다.

 

강미라(47) 사무장

팜프라가 들어오고 마을 분위기가 달라졌다. 피가 도는 느낌이다. 마을 어르신들도 이름을 외우시는 등 손자손녀처럼 대하신다. 두모마을에는 유채, 메밀꽃 등 꽃 천지다. 장비를 사놓고도 넘치는 꽃들을 활용하지 못했는데 젊은 팜프라가 해결한다. 어려운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아서 예쁘고 고맙다.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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