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메뉴 바로가기 본문기사 바로가기

아하! 경남역사

[아하! 경남역사]가야유산 기획⓯가야본성 - 칼과 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이야기

 

왜 지금 가야인가?

가야는 42년부터 562년까지 520년간 한반도 남해안에 있었던 여러 나라를 일컫는다. 가야가 존속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가야는 삼국에 끼지 못했다. 가야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모여 서로 공존했다.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비슷하다.

삼국에도 끼지 못하는 잊힌 나라에 왜 우리는 관심을 가질까? 가야는 작은 나라였지만, 그 문화는 결코 삼국에 뒤처지지 않았다. 또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가야문화의 특징

가야는 국제성을 가진 나라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를 세운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의 혼인을 알고 있다. 이 결혼은 신화적인 내용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첫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족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48년에 결혼을 했으니 적어도 2000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다문화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로 가야는 여러 개의 나라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살았다. 고고학적 연구의 결과로 경상도는 물론 남원의 운봉고원, 순천과 여수에서도 가야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점은 모든 지역이 자신들의 특색에 맞게 발전해가는 국가균형발전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세 번째, 가야금은 가야의 디아스포라이자 가야의 가치를 간직한 세계적인 유산이다. 가야금을 만든 가라국의 가실왕과 악사 우륵은 가야의 여러 나라가 뭉칠 수 있는 12곡을 만들었다. 아쉽게도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12개의 현을 가진 가야금은 하나하나의 선이 울려 조화롭게 음악을 만든다는 점에서 가야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가야는 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철로 갑옷, 칼과 같은 무기를 만들고 화폐로 썼으며, 일본이나 중국에도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는 이러한 문화와 기술을 가지고 수출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에서는 일본의 통모양, 중국 서진의 금동허리띠장식, 북방유목민이 세운 삼연의 화려한 말갖춤과 서역에서 만든 유리그릇까지도 출토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특별전(’19.12-’20. 3.1)

가야 문화를 알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가야 문화재 2600여 점을 모았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중 두 가지를 꼽자면 먼저 패널과 전시도록을 소설 현의 노래의 작가인 김훈 선생님과 함께 제작했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에서 작성한 원문을 김 작가께서 흔쾌히 교정과 윤문을 맡아주셨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현의 노래에 나오는 주옥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는 가야의 각 나라를 지칭하는 용어를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낮선 가락국-김해·금관가야’, ‘가라국-고령·대가야’, ‘아라국-함안·아라가야등 당시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오가야조에서 사용된 용어는 고려시대에 이름 붙여진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이름으로 부르기 위해 당시의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1991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가야전을 계기로 일본 역사학·고고학계에서도 임나 대신 가야라는 용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평을 제시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가야토기를 모아 만든 토기탑을 비롯해, 가야의 무사들이 도열해 있는 공간, 김해 양동리 162·대성동 29·고령 지산동 44호 무덤 등을 실제 크기에 가깝게 복원해 전시하는 등 전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것들을 시도했다.

 

가야가 전하는 이야기

가야는 통합한 이웃 나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562년 가라국을 끝으로 신라에 병합됐다. 400년 북방의 강자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정(南征), 이웃한 신라와 백제의 침략 등으로 점점 쇠약해졌다. 가야는 망했지만 가야의 정신은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통합보다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통합을 추구했던 2차 세계대전은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인식시켜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가야의 공존과 화합은 가야금과 함께 우리에게 전해진 가야의 중요한 정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양수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관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