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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생활정보]또 잎이 돋고 꽃은 피고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이다. 경자년은 육십 간지(干支)37번째 해로, ()은 백()이므로 하얀 쥐의 해이다. 농촌에서는 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기에 음력설을 쇤다. 설이 다가오면 보름 전부터 콩나물을 기른다. 쳇다리에 콩나물시루를 얹고 표주박으로 물을 부어주면 쪼르르 쪼르르 안방에서 개울 물소리가 났다. 얼지 않는 그 물소리가 나는 좋았다.

 

멀리 방앗간에 가서 아버지가 쌀을 찧어다 놓았다. 문풍지를 바르고, 초가지붕에 닭들이 널브러진 마당도 부지런히 쓸었다. 어머니는 살강과 찬장을 말끔하게 청소해놓고 기름칠을 해 무쇠솥을 반들반들 윤나게 닦았다. 볕이 좋은 마당 한쪽에 앉아 볏짚으로 햇빛이 미끄러지도록 유기그릇을 닦은 어머니는 설밑 대목장에 가셔서 제수(祭需)와 우리들 설빔을 사오셨다. 하얀 고무신과 면양말 한 켤레씩, 날마다 신었다 벗었다 하며 나는 밤잠을 설쳤다.

 

이윽고 그믐밤, 자는 사람은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섣달그믐밤, 온 집안에 촛불을 켜놓았다. 호롱불을 켜다가 촛불을 사방에 켜놓으니 그믐밤이 대낮같이 환했다. 사랑방에도, 뒤주에도, 뒷간에도 촛불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난에 빠진 우리 집이 내년엔 부자가 될 것처럼 밤새 춤을 추고 있었다. 흰 사기그릇에 쌀을 가득 담고 그 한가운데 촛대를 세워 성냥개비로 불을 붙인 촛불, 춤을 추기도 하고 혀를 날름거리기도 하는 촛불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어떤 의식을 치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날 차례를 지내기 전, 어머니가 삶은 계란 한 개씩을 식구들에게 건네주었다. 장독대에 내놓고 서리 맞힌 삶은 계란, 설날 맨 처음 이 계란을 먹으면 액을 막아준다는 구전 때문이리라. 이제 초가지붕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옛사람들도 사라져, 그 시절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희미해진지도 오래되었다.

 

기쁨도 슬픔도 세월이 데려왔다가 세월이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덧없다 하지 않겠다. 어차피 지난해는 사라지고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새해에도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래, 부지런히 해보는 거다. 경자년 새해!

 

박태현 명예기자(밀양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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