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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간직한다는 것은

가을은 단풍 하나로도 세상이 아름답다. 단풍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아름다움을 쉽게 구체적으로 느끼고 보고 만질 수 있어서 사랑과 추억의 상징이 된다. 가끔 오래된 책 속에서 발견하는 퇴색된 단풍은 손끝을 떨리게도 한다. 책의 속지에 말라붙은 잎을 살짝 떼어내면 잎의 자국이 종이에 찍혀 있어, 마치 사라지지 않은 시간과 마주친 것 같은 감동이다. 이젠 말라버린 시간이지만 오래된 시간 속의 자신을 찾아낸 것 같은 묘한 기쁨과 설렘이 있다.

간직한다는 것은 사물이나 마음을 잘 간수하여 두는 것이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해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써서 없어지는 것보다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상대에 따라 당장 긴요하게 필요한 것도 있을 테지만, 늘 곁에 둘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다. 말라붙은 낙엽처럼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언젠가 자신이 고른 사물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그 무엇에 비하랴.

필자에게도 소중하게 간직하여 가끔 꺼내 보는 것이 있다. 우리 부부의 결혼 예물시계이다. 결혼식을 부모님 도움 받지 않고 소박하게 치르기로 하고 준비하자니, 가장 아까운 것이 예물 비용이었다. 그래도 기념은 해야하므로 필요한 시계를 사기로 했다. 금은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가격을 모두 묻고, 적당한 가격인 6만 원짜리로 정했을 때, 금은방 주인은 빙긋 웃으면서 대부분 예물은 비싼 것으로 고르는데, 두 사람의 합리적인 생각에 반했다4만 원으로 깎아주었다

우리도 깎을 생각을 안했지만, 금은방 주인도 예물은 처음 깎아준다며 웃었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그 후 우리의 가장 아름답고 들뜬 시간은 휴대폰이 생기면서 빨간색 선물상자에 간직하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소중히 간직한 것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한때의 따뜻한 마음과 감동이 아닐까. 잎을 떠나보낸 텅 빈 나무는 또 한 해를 준비할 것이다. 하나씩 하던 일들 마무리 짓고, 다음 해 단풍이 물들기까지 지금 눈앞에 있는 나무의 절정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2019년을 간직할 단풍잎 하나 주우러 가야겠다.

 

 송문희 명예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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