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암
지난겨울 원효암 오르는 길섶엔
칼날 같은 바람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향내 그윽한 절 마당에 스님은 간 데 없고
흰 고무신 한 켤레 댓돌 위에 발 모두고 앉았다.
대웅전 너머 등 굽은 소나무는 바람을 막고 섰는데
무심한 진눈깨비는 지친 허리에 한 겹 더 내려앉는다.
칠성각 처마 밑에 늘어선 무청은 세월을 말리고
언 땅에 뿌리내린 김장독은 한겨울을 삭인다.
퇴색한 단청은 사람들 손길 밖에 있지만
내 발길은 그 속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원효암 : 함안군 군북면 여항산에 있는 해인사의 말사(末寺)
이강섭 명예기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