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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의 소리

[도민의 소리]80대 초등생의 생활방역

꿈꾸는 노인을 늙지 않는다!

사람들이 꾸는 꿈은 다양하다. 요즘같이 불확실한 시대, 불안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는 복지관 등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한글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 속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 여러 어르신을 만나고는 한다.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는 그녀가 92세 때 낸 첫 시집이다. 시집 속에는 다양한 경험철학이 녹아들어 있어서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노인들의 삶에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소외당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삶의 행보인지도 모른다.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오기까지 노력한 보상으로 여긴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노인은 약하고 힘없고, 할 일이 없는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새 일을 시작할 때구나하는 생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황혼에 더욱 보람찬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노인들의 풍부한 경험이 후세에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보존된다면 우리 사회는 노인을 공경하며 더 많은 소통이 가능한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내가 야학을 하면서 만난 주증식(83) 할아버지는 지난 시절에 놓친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검정고시로 대학까지 진학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지금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다.

 

이 세상에서 처음 겪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부터 복지관도 못 오시고 집에서 공부한다고 하시기에 확인 차 몇 번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가 기대하고 계시는 검정 기일이 계속 연기가 되어 다시 알려주기 위해서다. 삐삐~~~~삐삐~~~ 신호음만 들리고 며칠째 전화가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요즘 초등학생도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도 없다낮에 밭에 나가면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새벽에 통화가 되었다.

 

주증식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오셨다고 한다. 지금도 혼자 사시면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힘든 농사일로 지칠 법도 한데, 남는 시간에 검정고시 준비를 하시는 것에 나는 상당한 호기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농사일이 힘에 부치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공부하고 싶은 꿈을 접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나이 83세면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도전정신은 남다르게 강하다. 어쩌면 이것이 노인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생을 더욱 바짝 조이면서 꿈을 이루어가는 정신 말이다.

지금은 그 많은 농사일을 농협에 맡겨두셨다고 한다. 농협에서 대리경작을 하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주증식 할아버지는 조금 더 일찍 농사일을 그만 두고 검정고시를 확실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지금이 내 공부의 시작이야. 나는 초등학생이야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내 지난날의 꿈 많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 계속적인 시험연기로 복지관에 못 나오시는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혼자 사시는 시골집을 방문했다. 대청마루가 있는 넓은 집이었다. 마루 한편에는 상이 펼쳐져 있고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틈나는 대로 책을 다섯 번이나 보았다면서 검정시험의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다고 큰소리치신다.

황금찬 시인이 90세에 36번째 시집을 내면서 나는 죽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는 말을 했다. 주증식 할아버지의 학업 열정이 황 시인의 모습과 같아서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열심히 신념을 가지고 한다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한 우리들이기에 가슴에 찡한 감동이 일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일상이 흔들리고, 생활 속 거리 두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주증식 할아버지는 코로나19도 무섭지 않다. 아직 꿈이 많은 초등생이기 때문이다. 어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서 검정 일정이 잡히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에게 알려드려야겠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수험생의 자세를 유지하고 계셨으면 한다. 유난히 긴 봄이 지나가면, 꿈으로 가득 찬 할아버지의 봄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김가송 명예기자(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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