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천 냥 시주를 할래, 홀시아버지를 모실래? 하면 천 냥 시주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참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저희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얼마 후에 시아버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게 약 2년 전이었죠. 아, 그런데 정말 시아버님을 모시고 함께 살다보니 그 불편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장 일이 없으시니까 집에서 하루 종일 왔다갔다하며 심심해 하시고, 여름에는 좁은 집에서 방문을 열어 놓고 주무십니다. 가끔 너무 더울 때면 속옷차림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다니십니다.
또 직장일 때문에 좀 늦게 귀가해 챙겨 드리지 못하면 그때까지 저녁식사를 안 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스스로 챙겨서 꺼내 드시는 스타일이 아닌, 전형적인 가부장적 옛날 어르신이었죠.
나는 그런 상황이 싫어서 퇴근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무겁고, 심지어 우울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 몰래 병원엘 가서 정신과 선생님한테 상담을 받았습니다.
“불만 내용을 시아버님께 말씀을 안 드리면 그게 병을 만드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요즘은 시아버님이 하늘같은 존재라 며느리가 꼼짝 못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시아버님의 잘못된 부분을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남편분께도 협조를 구하세요. 도와 달라고.”
그날 저는 남편에게 이런 내용을 소상히 말했죠. 그러자 남편도 100% 공감!!! 당장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다음날, 곧바로 남편과 저는 시아버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버님은 즉시 저희 말씀을 들어주셨습니다. 여름에 방문 닫고 주무시고,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시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 나는 시아버님께 점점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눈을 맞추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시아버님 모시는 건 힘들어’라는 부정적 생각을 버리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가는 날엔 아버님이 아이들 밥을 챙겨 주시고, 당신도 드신 후 설거지까지 하십니다. 저는 설거지를 하시는 아버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참 웃었답니다.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기에.
지금 저희 집에는 평화가 넘칩니다. 이제 바라는 건 아버님 건강뿐입니다. 우리 아버님, 항상 건강하시고 웃음 잃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박나영(사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