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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탐방

[체험&탐방]“의열(義烈), 자유는 쟁취하는 것!”

밀양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 의열기념관을 가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작은 하천 경남 밀양의 ‘해천(垓川)’은 항일독립운동사를 써내려간 역사적인 공간이다. 해천가의 내일동과 내이동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무장 독립운동의 상징인 의열(義烈) 투사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 <암살>이 깨운 ‘의열단장 김원봉’. 그도 여기서 태어났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더 주목을 받게 된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와 의열기념관을 다녀왔다.

 

독립운동의 성지 밀양, 그 중심에는 해천(垓川)이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중 밀양에서만 79명. 그 중 해천 주변 마을 출신이무려 26명이다.(2019년 2월 말 현재) 이곳을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로 부르는 이유다. 조선 성종 10년, 왜구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밀양읍성을 쌓고 수로를 만들었다. 이 수로가 바로 해자천(해천은 줄임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밀양 해천은 항일운동과 독립운동가 배출의 근간이 되었다.

이 600여m 해천을 따라 양쪽으로 항일운동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밀양지역 독립운동가 79명의 위패가 방문객을 맞는다. 청춘과 목숨을 바친 분들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와 닿는다. 태극기와 벽화로 그려낸 독립운동의 장면 앞에서 잠재된 애국심이 확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산책로를 걷다보니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난다. 봄맞이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좋을 것 같았다.

해천 중심의 의열기념관은 김원봉 단장의 생가 터에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김 단장의 절친 윤세주(1900~1942) 열사의 생가가 있다. 윤세주 열사는 밀양 3·13만세운동을 이끈 주역이다. 그의 집 앞에는 손수 지은 항일가 <최후의 결전>이라는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황상규, 김대지, 권잠술, 홍재문, 윤치형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어린 시절을 이 해천에서 보냈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많은 독립투사들이 나고 자란 곳이지만 아무래도 김원봉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될 것 같다. 1898년 이곳에서 태어난 약산 김원봉은 고모부인 황상규(1890~1931)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이 일제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자 전국 곳곳에는 광복단, 대한광복회 등의 독립단체들이 비밀리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밀양에는 일합사(一合社)라는 비밀결사가 활동하고 있었다.

1919년 만주 길림으로 간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22세의 나이에 의열단을 창립하고 단장이 되었다. 후에 조선민족혁명당(1935년) 총서기와 조선의용대(1938년) 총대장으로 항일무장독립투쟁에 앞장섰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김원봉 역)의 명대사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이 한마디로 그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또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 박차정 열사이다.

 

의열기념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들을 기리는 곳

의열(義烈)이란 의로운 일을 맹렬히 행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운 장렬한 행동과 그 가치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의열단뿐 아니라 신간회, 대한독립군 등 많은 항일독립운동단체가 있었고 모두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그래서 의열기념관은 의열단은 물론 의열투사 모두를 기리는 공간으로 우뚝 서 있다.

 




 

1층  우리들, 지금 여기에 있다(의열투쟁의 모든 것)

전시관에 들어서면 의열투쟁의 역사와 배경을 정리한 연대표가 관람객을 맞는다. 1906년 2월 기산도 선생의 의거를 시작으로 1945년 7월 경성부민관 폭탄투척 의거까지 총 40여 건의 투쟁 기록이 있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밀양 출신 3인이 서명했던 대한독립선언서가 전시되어 있다.

밀양이 의열투쟁의 본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지역적 특성과 원동력을 알려주는 코너도 눈길을 끈다.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의 의열투쟁과 김원봉 장군의 연설장면 등을 담은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들의 발자취를 남기는 디지털 방명록도 보인다.

 

2층  그들의 역사가, 지금 여기에 있다(의열단의 활약)

계단을 오르면 관람객은 제일 먼저 반씨주택을 만나게 된다. 반씨주택은 1919년 의열단을 창립한 길림의 농가다. 반씨주택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의열단 창립단원 10명(*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상윤,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과 초창기 고문인 *황상규, *김대지 선생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파란색은 밀양 출신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최수봉 의사의 석고상과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의거’를 웹툰 형식으로 제작한 동영상도 감상해 보자. ‘조선의용대’와 박차정 열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다. 박 열사의 묘소는 의열기념관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3층  지금 여기에, 함께 살아 있다(평화의 쉼터)

옥상 쉼터에는 광복의 기쁨과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청동상, 포토존이 있다. 휴식공간에서 가족끼리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으며 지천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생가지와 항일운동이 가득 담긴 해천 거리를 조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나들이가 될 것이다.

취재 도중 뜻밖의 관람객을 만났다. 밀양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밍기젬(32) 씨는 에티오피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였다. “출퇴근길에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는데 휴일이라 마음먹고 왔다”며 “밀양에 살게 되면서 한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그림으로만 봐도 아픈 역사가 느껴진다”고 했다. 앞으로 한국 역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의열기념공원으로 조성할 것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는 3·13밀양만세운동 재현행사가 밀양관아와 삼문동 야외공연장 등에서 펼쳐진다. 의열단 창단일인 11월 10일에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의열기념관과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등에서 기념식과 김원봉과 의열단을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 공연 등 많은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밀양시는 이곳을 독립운동체험관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의열기념관 주변을 의열기념공원으로 조성하고 윤세주 생가도 복원한다. 밀양을 항일애국역사의 상징으로 승화시킨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지언 기자  사진 김정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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