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발생원인

지금까지 임진왜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무모한 전쟁을 강행했는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 임진왜란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단순히 공명심과 과대망상증, 정복욕 등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도요토미가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의도를 계승하였다, 일본이 명과 勘合貿易을 하고자 하였는데 조선이 중개를 거절했기 때문에 혹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침략했다, 장남 쓰루마쓰(鶴松)의 죽음으로 인하여 벌였다, 국내 평정과 국내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제 대명(大名)과 무사들의 잉여 무력을 외부로 전환하여 불만을 해소하려고 벌였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요토미가 공명심이 강하고, 과대망상적인 성격이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러한 점만을 조선 침략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에게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 구상을 언급한 바 있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다이묘(大名)들이 침략전쟁에 호응했다. 따라서 도요토미의 개인적인 성격만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또한 감합무역의 재개는 전쟁이 한계에 봉착하고 명과 화평교섭이 진행되는 가운데 등장했던 요구이다. 도요토미가 일본과 명의 무역 재개를 희망하고 있었으며 명을 정복하고자 했던 이유가 교역권의 지배와 관련된 것임은 틀림없지만 외교 교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굳이 전쟁을 일으킨 직접적인 목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1591년 3월, 일본이 쓰시마의 소오(宗義智)를 통해 조선에 전달했던 요구는 ‘가도입명(假道入明)’, 즉 ‘명으로 가려고 하니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히데요시의 원래 요구는 ‘정명향도(征明嚮導), 즉 ‘명을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안내하라’는 것이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예측한 소오가 문구를 몰래 바꾸어 요구했던 것이다. 조선 뿐만아니라 중국마저 정벌하려는 것이 히데요시의 구상이었고, 화평교섭에서도 마지막까지 고집했던 것은 조선 남부의 영토할양 이었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대 목적은 영토 획득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일본의 센고쿠 다이묘(戰國大名)는 새로운 전쟁에 대비해 늘 군사동원체제를 갖춤으로써 가신을 통제해왔다. 그리고 전쟁에서 새로 획득한 영토를 가신에게 나눠주고, 부하들 역시 그러한 은상을 겨냥해 주군에게 충성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도요토미도 이와 같은 센고쿠 다이묘로서 전국통일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전국을 통일하자 이러한 메커니즘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영토 정복전쟁을 통해 메커니즘의 부활을 도모했는데, 바로 임진왜란이라는 침략전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