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전투

부산진성전투

부산진성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로, 1592년 4월 13일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조선 침략 선봉군인 제1군 18,700명의 대군은 700여척의 병선으로 부산포를 내습해 왔다.

당시 부산 첨사는 정발(鄭撥)이었다. 부산진성은 경상도 해안지방에 설치된 수군 첨절제사의 진영인 부산포진, 다대포진, 가덕진, 미조항진 등 4개 진 가운데 경상도 제1의 해상관문으로서 일본군들이 조선에 상륙할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이었다. 그리고 부산포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왜관이 있어서 다수의 일본인들의 제한적인 출입이 유일하게 허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다수의 일본인들이 체류하였으므로 대마도에서 차출된 군인들은 부산의 지리에 익숙했다.

한편, 당시 부산진성의 민호는 300여 호로 군민을 합하여도 적의 대군에 비교가 되지 않았으며, 실제 병력은 불과 1,000 여명이었다. 그러나 적군의 공격에 병력과 무기에서 열세였으나, 왜군들의 길을 빌려달라는 가도(假道)를 요구하였으나, 정발장군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굳은 결의를 하고 전투태세를 공고히 하는 등 전투에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열세에도 정발장군을 위시한 부산진의 군, 관, 민들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아무튼 부산진성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아군이 적을 맞이하여 처음 치른 전투로서 군사수와 무기 면에서 적과 비교하여 현저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군, 관, 민이 나라의 관문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일본군은 상륙 당일로 부산포진을 점령함으로써 조선군의 해안 방어세력을 제거하고 조선침략을 위한 해안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관련 유적으로는 정공단과 부산진성터, 부산진지성(자성대), 부산진순절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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