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

조총(鳥銃)

조총은 원래 서구에서 개발된 화기로 직접 손으로 화약심지에 불씨를 점화하여 사격하는 기존의 우리의 총통(銃筒)과는 달리 격발장치가 있어 방아쇠를 당기면 용두(龍頭)에 끼워져 있는 화승(火繩)이 화약에 불을 붙여 줌으로써 탄환이 발사되는 방식의 화승식소총(火繩式小銃)이다. 따라서 조총은 기존 화기에 비해 조준사격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명중률이 뛰어났던 총이다.

이 총이 16세기 동아시아로 전래된 후 임진왜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조총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날아다니는 새도 능히 맞출 수 있다’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물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전인 1589년(선조 22) 7월 대마도주 종의지(宗義智)가 우리나라에 몇 개의 조총을 진상해 왔으나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군기시(軍器寺)에서 사장되고 말았다.

그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군은 초기에 일본군의 화기와 전술에 연패를 당하였다. 초기 전투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화기의 도입이 필수적임을 깨닫고 일본과 명나라의 선진 화기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전리품(戰利品)을 활용하였으며, 항복한 일본군 중에서 조총 제조기술을 지닌 자를 등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였다. 특히 이순신, 김시민, 김성일 등은 일찍이 조총을 승자총통을 능가하는 화기로 인식하고 조총을 모방 제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져 이듬해 3월에 마침내 조총 제조기술을 익히기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12월초에는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의 감영과 병영에서도 조총을 제조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 조총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점차 정교한 총을 제조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총통 조선총통

임란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조총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그 제조기술도 발전하게 되는데, 1657년(효종 8) 3월에는 청나라가 많은 수의 조총을 무역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우리나라 조총의 우수성은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현재 조총은 다수가 각 박물관에 전해오고 있는데, 모두 조선후기에 사용되었던 화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