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1535 ~ 1619

일본의 장수로 오오스미 구리노죠오의 성주였다. 임진왜란 초기 한반도에 출병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나고야에 집결하고 있을 때, 오오시미의 호족 우메기다 구니가네가 반란을 일으켰다. 시마쓰 부대가 출병한 후 후방을 맡고 있는 시마쓰 요시히로의 동생 시마즈 도시히사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할복자살 시켰다.

요시히로는 1만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강원도 점령을 담당하였다. 이때 한반도 파견군이 반란을 일으켜 돌아오는 것을 근심한 도요토미의 명에 의하여 수송선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요시히로는 귀환선편으로 가장 많이 조선 사람들을 강제 납치해갔다.

정유재란때는 선봉부대 다음으로 1597년 5월 1일에 가덕도에 상륙, 3개월간 무위도식하고 있었다. 후속부대가 도착하자 행동을 개시하여 7월 28일 견내량을 지나 남원성 전투에 참가, 이 전투에서 얻은 코 61개를 인도하여 할당량을 완납하였다.
시마즈 요시히로 묘 정면에서 바라보는 모습 시마즈 요시히로 묘

용안회의에서 전라북도 부안에 배치되었으나, 금구의 조선 의병이 공격하였으므로 전라북도는 불안해서 있을 곳이 못된다고 판단, 정읍회의에서 더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전라남도 해남, 강진으로 배치되었다. 여기에서 약 15일간 머물다가 조선 의병에 밀려 경상도 사천으로 후퇴, 신진리 왜성을 축성하고 주둔하였다.

방을 걸고 "조선 사람은 일본군을 믿고 농사에 전념하라, 조선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본군은 신고하면 처벌하겠다"는 선무공작의 경상도 책임자가 되었다.

도요토미가 죽은 사실을 접하고 명군과 싸우지 않고 있다가, 본국에서 온 자기 부대의 수송선을 타고 남해도 남단을 지나 일본 본토 방향으로 흐르는 조류와 북서 계절풍을 이용하여 귀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