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설화

사명대사 설화

밀양 무안면에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 진사 벼슬을 했는데, 아들 하나를 낳고 본처가 죽어 후처를 보게 되었다. 후처도 아들을 낳았는데, 전처자식이 있으면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여 없애기로 작정하였다.

큰 아들은 어언 장성하여 장가를 가게 되었다. 후처는 자신이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리고 온 미비 종을 은밀히 불러 첫날밤에 신랑의 목을 베어오라고 명했다. 상전의 명이 지엄한데다 일을 성사시키면 종문서를 파주고 전답까지 떼어주겠다는 데 혹해, 미비종 노파는 그러마 약조하고 남편과 함께 장가가는 새 신랑을 따라갔다. 첫날 밤, 밤이 깊어 신랑 신부가 모두 깊은 잠에 들었을 때 종의 남편은 몰래 신방에 들어가 신랑의 목을 베어서는 항아리에 넣고 집으로 가져와 다락에 처넣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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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랑의 목이 없었다. 놀랍고 비통한 중에 생각해 보니 신랑을 죽인 누명을 꼼짝없이 자신이 뒤집어쓰게 될 판이라, 색시는 식구들 몰래 그 길로 도망을 쳤다. 신랑 측에서 따라갔던 상객도 신랑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신랑 신부 단 둘이 자다가 신랑은 죽고 신부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이것은 분명 신부에게 간부가 있어 남녀가 공모하여 신랑을 살해하고 함께 도주했음이 틀림없다고 얘기하게 되었다.

자신의 소망대로 되었으므로 임진사의 후처는 약속대로 미비종에서 땅을 떼어주고 종문서도 파주어,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살게 하였다.
색시는 어떻게든 내막을 수소문하여 신랑의 한을 풀고 자신의 누명도 벗으리라 결심하고 그로부터 방물장사를 하면서 본색을 감추고 전국 각처를 떠돌아 다녔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색시는 자식도 없이 늙은 내외가 단둘이 살고 있는 한 농가에 들어 하루를 묵게 되었다. 할멈은 떡방아를 찧으러 가고 영감은 낮잠을 자는데, 건넌방에서 바느질하고 있는 색시의 귀에 영감이 잠꼬대하는 고리가 들렸다. 가위에 눌린 듯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헛소리를 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싶어 색시가 유심히 들어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다.

색시는 영감이 누워 있는 방으로 건너가 영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바른 대로 말하라고 을렀다. 겁에 질린 영감은 임진사 후처의 명으로 자기네 내외가 신랑을 죽였으며, 그 목은 항아리에 넣어 다락에 두었다는 이야기를 실토했다.

정월 초하룻날인 그 이튿날, 색시는 마침내 시댁 동네를 찾아갔다. 본처와 아들의 산소에 다녀오던 임진사와 색시는 마침 길에서 마주쳤다. 색시는 임진사에게 큰 절을 올리면서 자신이 그 며느리임을 밝혔다. 그녀야말로 간부와 함께 아들을 죽인 원수라고 알고 있는 터라, 임진사는 그가 그런 며느리를 둔 바 없다고 단호히 돌아서는데, 색시는 한 마디만 듣고 가시라고 시아버지를 붙잡아 미비종 내외가 저지른 죄상을 소상히 아뢰었다.

임진사와 색시가 함께 집으로 가서 다락문을 열어보니 과연 명주 수건으로 동인 항아리가 있고, 그 안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한을 품고 죽어 아직도 눈물을 머금은 채 색조차 변하지 않은 아들의 머리를 보고 임진사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였다.

색시가 미음을 끓여 시아버지께 올리고 있는데, 남편이 본처의 산소를 찾아간 데 속이 상해 가까운 친정에 갔던 후처가 돌아왔다. 색시가 절을 올리려 하자 후처는 우리 아들을 죽인 년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왔느냐고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때 임진사가 머리만 남은 아들의 상투를 잡고 후처의 얼굴을 후려치며 누구에게 음해를 씌우려 하느냐고 호통을 치자 너무나 놀란 나머지 후처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임진사는 후처와 그 소생을 집안에 가두고 문을 걸어 잠근 다음 집 둘레에 짚동을 빙 둘러 세웠다. 많던 재산을 정리하여 반은 며느리에게 주고 나머지는 아들의 혼을 절에다 천도시키고 나서, 임진사는 집에다 불을 놓았다. 그리하여 후처와 그 소생들은 불에 타 죽었으며, 며느리도 이제는 남편의 한과 자신의 누명을 풀고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임진사는 그 길로 서산대사를 따라 입산했다. 그후 그는 수양정진하는 한편 무술을 연마하여 임진왜란이 났을 때 승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으니, 그 임진사야말로 곧 저 유명한 사명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