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대용마

경천대용마

사벌과 중동을 가로 질러 흐르는 낙동강가 절벽 경천대 밑 청소(淸沼)를 용소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번개처럼 날쌘 말이 백사장에 뛰어 나와 놀다가 물속으로 들어갔다고들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에 날개가 달렸다고들 했다. 때로는 날아다니다가 내려 오더라고들 했다. 그 말을 용마라고도 하고, 천마라고도 하고, 비마라고도 한다. '세상에 그런 말도 다 있다니!' 정기룡은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어느 날 경천대로 갔다. 마침 말 한 마리가 용소에서 뛰어 나오는게 아닌가? 회색 바탕에 검은 점이 큼직큼직하게 몸에 박혀 있는 아주 경쾌하게 생긴 말이었다. 멀찌감치 서 내려다보던 정기룡의 눈엔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듣던 대로 날쌘 말이었다. 재빠르기가 번개 같았다.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이 포근한 산야를 어찌 피로 물들일 수 있으랴.' 정기룡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저 말을 얻어서 내 한 몸이 분골쇄신이 되더라도 기어코 백성의 가슴속에 평화를 찾아 주고, 기쁨을 안겨주리라.' 이렇게 다짐한 정기룡은 우선 용마를 얻을 궁리를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소리만 나면 번개같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마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저 말을 얻을수 있을까?'
멀리서 바라보는 경천대 전경 경천대

정기룡은 궁리를 거듭하였다. 6일째 되던 날이었다.
정기룡은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강가에 달려갔다. 백사장에다 사람 같은 허수아비를 세워 놓았다. 그리고 말의 동정을 살폈다. 허수아비를 처음 본 말은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말은 그 이튿날도 그랬다.

며칠이 지났다. 말은 허수아비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므로 마음을 놓았는지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가 찔끔 뒤로 물러서기도 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말은 허수아비에게 몸을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허수아비에게 마음을 놓았을 모양이다. 이 기회를 노리던 정기룡은 말이 나오기 전에 허수아비 속에 숨었다.

그날도 용마는 아무 의심 없이 허수아비를 문지르고 있었다. 정기룡은 번개처럼 달려 들어 갈기를 움켜쥐고, 말 등에 뛰어 올랐다. 말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가 네 주인이거늘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려느냐? 아무 말 말고 나를 섬기는 착실한 부하가 되어라." 말 위에서 정기룡은 호통을 쳤다. 정기룡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말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룡은 말을 한참 쓰다듬다가 말에게 채찍을 가했다. 말은 마치 구름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기룡을 싣고는 강변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아 왔다. "과연 하늘이 내린 사람에 하늘이 내린 말이로구나."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감탄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옛부터 성인이 나면 기린이 나고, 장군이 나면 용마가 난다는 전설이 있듯 훗날의 정기룡 장군을 위해 하늘이 보내준 용마가 어찌 주인을 몰라보았으리요. 임진왜란 7년을 이 용마와 함께 산야를 달렸으니 경상도엔 이 용마의 발굽이 아니 거친 데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