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막암 설화

군위군 막암 설화

부계면 대율리(한밤)에서 팔공산 산허리를 따라 3km정도 오르면 신령스러운 팔공산의 정상이 쳐다보이고, 기암괴석으로 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공산의 절경 속에 막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막암은 팔공산의 크고 작은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 온 물줄기가 이 곳에 와서 약10여 평 넓이의 평평한 바위를 지나는데 그 바위 아래는 열대여섯 사람이 쉬 들어 갈 수 있도록 생겼다. 그 바위 안에 들어가면 폭포의 물줄기가 밖을 막아주기 때문에 밖에서는 물줄기만 보이고, 바위 안쪽의 굴은 보이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유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이 이 지방의 의병대장인 홍천뢰 장군과 혼암(混岩) 홍공(洪公)을 찾아와 위기에 처한 나라 일을 의논하고, 사람으로서 행하고 지켜야 할 인륜도의를 서로 이야기 할 때에 이 막암에서 어울렸다고 한다. 막암의 절묘한 바위와 그 바위를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맑고 맑은 폭포수와 주변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여헌 장현광 선생은 그 홍취를 못 이겨 시조 한수를 읊었으니, "바위로 집을 짓고, 폭포로 술을 빚어 송풍(松風)은 거문고 되고, 조성(鳥聲)노래로다. 아희야 술을 부어라 여산동취(與山同醉)하리로다" 하였다. 어려운 국난을 서로 의논하고, 그러는 가운데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만큼 여유 있고 굽지 않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장현광 선생과 홍 장군이 서로 친히 지낸 일을 기념하고, 선조들의 뜻을 새기기 위해 두 문중의 후손들이 막암학계를 만들어 해마다 음력 4월 10일 성대한 행사를 하고 현재도 서로 친히 지내며 내왕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