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보수 및 신축

산성 보수 및 신축

수군기지(영진)의 이설 등이 잦아지면서 수군들은 성곽을 비롯한 여러 관청을 짓는 공사에 동원되었다.
일례로 경상도 수군은 세종대에 들어오면 각종의 토목공사에 수시로 동원되게 되었으며, 이것은 많은 폐단을 발생시켜 세종 16년에 오면 포 주위에서의 영전·조선·초철 외의 타역에는 역사하지 말도록 조치되었다.

또한 전라도지역과 함께 왜구의 침략을 제일 먼저 받을 수 있는 방어의 최적지라고 하여 세종 17년에 경상우도와 전라좌도의 수군은 각 포에 부과되었던 요역, 부득기한 공물과 둔전·착어 등의 일을 제외한 일체의 잡역이 면제되었으며, 이러한 조치는 세종 19년에 오면 경상좌도와 전라우도에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경상도수군의 각종영선동원은 계속 되었으며, 예종대의 기록을 보면 경상도의 오이포와 안골포의 수군들까지 경기에 와서 영능을 옮기는 작업에 동원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