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포전술

여러 측면에서 열세에 있었던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대형 화포의 우수성 또한 그중의 하나였다. 당시 거북선과 판옥선에는 천자총통 ㆍ 지자총통 ㆍ 현자총통 ㆍ 황자총통 ㆍ 별황자총통 등의 대형화포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 화포의 우수성은 해전에서의 조선 수군이 함포전술(艦砲戰術)을 펼치는데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임진왜란때 일본 수군은 예로부터 전해 온 고유의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을 사용하였다. 이 전술은 선박 위로 뛰어들어 개인 휴대무기를 이용하여 적을 살상하는 단병전술(백병전)이었는데, 주로 약탈 선박의 선원을 살해하고 물품을 빼앗기 위한 왜구의 전술에서 기인된 것이라 하겠다. 이후 16세기 중반 조총이 전래되면서 기존의 단병전술 외에 조총을 활용한 사격전술이 추가되었으나 전체적인 전술 변화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반해 조선 수군은 대형 전함의 전후좌우에 장착된 각종 대형화포를 바탕으로 함포전술을 구사하였고, 전함을 이용한 당파전술, 화공전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특히 조선군의 화포는 일본군의 조총에 비해 사거리가 월등히 길었기 때문에 접근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으므로 육전과는 다르게 조선 수군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대형화포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대형화포
화포명 길이(cm) 구경(mm) 발사물(『화포식언해』) 사거리
천자총통 130~136 118~130 대장군전 1발, 조란탄 100발 900보, 10여리
지자총통 89~89.5 105 장군전 1발, 조란탄 100발 800보
현자총통 79~83.8 60~75 차대전 1발, 조란탄 100발 800보, 1500보
황자총통 50.4 40 피령차중전 1발, 조란탄 40발 1100보
별황자총통 88.8~89.2 58~59 피령목전 1발, 조란탄 40발 1000보

잠시 임진왜란 때의 조선 수군이 벌인 해전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도록 하자.

1592년 7월 8일 이른 아침, 이순신은 거제도의 목동 김천손으로부터 왜선 70여 척이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이르러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출동하였다.
이후 일본군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함대 73척이 견내량에 정박중이다는 것을 알게 된 이순신은 견내량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 판옥선은 서로 부딪치게 될 것 같아서 전투하기가 곤란할 뿐 아니라, 적은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어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이순신은 판옥선 5ㆍ6척으로 왜군을 공격하여 총공격하는 것으로 보이게 하여 적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고, 이 작전에 넘어간 일본 수군은 돛을 올리고 조총을 쏘며 쫓아왔다. 이에 조선 수군은 퇴각하는 것처럼 바깥 바다로 나온 후, 이순신은 후퇴하는 속도를 조절하여 적선이 일렬로 서도록 유인한 후 급선회의 명령을 내려 마치 학의 날개와 같이 전개하여 전선을 좌우에서 포위하는 학익진(鶴翼陣)을 펼치면서 적선에 포격을 가하였다.

이후 조선 수군의 거북선이 적진에 돌격하여 전열을 흩트려 놓고, 모든 전선에서 각종 화포와 화전을 발사하여 일본 수군의 전선을 격파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와키자카의 휘하 전선 47척을 격파하였고 12척은 나포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첩이라 일컬어지는 한산대첩이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일본군의 해상을 통한 진격에 제동을 걸었고, 수세에 있던 전황을 뒤바꿔 전란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이 한산대첩은 이순신의 탁월한 작전 지휘와 그 지휘 아래의 조선 수군의 눈부신 활약, 거북선ㆍ판옥선의 우수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형 화포의 성능이 어우러져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특히 학익진 전법은 후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사용했던 전법이나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이 대한해협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파한 전법과 매우 유사한 전술이다.
서구의 전쟁사가 발라드(G.A. Ballard)는 이순신이 펼친 이 전술에 대해 고도로 훈련된 정예함대만이 펼칠 수 있는 것으로 그 기동성은 놀라운 것이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