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해전

살라미스 해전은기원전 492년에서 448년까지 일어난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의 주요 전투 중 하나이다. 비록 이 전투가 다른 전투인 마라톤전투와 테르모필레 전투에 비해서 유명하지 않지만, 이 전쟁은 아테네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역사적 배경

당시에 세계는 페르시아 제국의 손 안에 있었다. 페르시아 인들은 서아시아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제국을 세웠다. 이들은 서쪽으로 영토를 더 넓히기 위해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점령해야 했다. 그래서, 페르시아 여러 왕의 재위기간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재위기간에 일어났다. 그는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을침략했던 왕인 다리우스 1세의 아들이었다. 이오니아 지방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연합해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자,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군대를 보내서 반란을 제압하게 된다.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이 다른 그리스 국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아테네만 유일하게 군대를 보내주었고, 결국 페르시아는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을 도와주었던 아테네를 제압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살라미스해전도 그림 살라미스해전도

페르시아가 그리스 본토를 침략했을 때,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 대군을 아테네에서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벌판에서 맞는다. 이 전쟁은 아테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전쟁 후에 한 연락병이 아테네로 뛰어가서 아테네 군의 승리를 외친다. 그는 이 말을 전하고 죽었다. 그가 행했던 일은 후에 현대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초석이 된다.

다리우스 1세는 다시 아테네 침공 계획을 세웠으나 이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죽게 된다. 그래서 아테네 침공 작전은 그의 아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의 신하들은 그가 페르시아에 있도록 두지 않았다. 신하들은 아버지의 대업을 이어야 한다고 그를 종용했다. 마침내, 그는 침공 계획을 세우고 페르시아 전역에서 군대를 모은다. 군대 모으는 일이 끝날 즈음에 그는 그리스 본토로 진군하게 된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군이 528만이었다고 기록하지만, 현대 그리스 역사가들은 360만 정도로 보고 있다.

페르시아 군은 해안가를 따라서 남진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음식이나 무기를 해군한테서 조달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페르시아 군이 중부 그리스의 중요한 요충지인 테르모필레 근처인 말리스의 타키스 지방에 도착했다. 만약 그리스가 이 테르모필레 지역을 잃게 되면 아테네와 그 남부 지역의 도시국가들도 페르시아인들의 손에 잿더미로 변할 터였다. 그리스 남부의 31개 도시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군에 맞서기로 한다. 스파르타인들이 이 연합 그리스 군대의 리더가 된다.

기원전 480년 8월 18일에 테르모필레 전투는 시작된다. 스파르타의 왕인 레오니다스는 7천명의 그리스 연합군과 함께 페르시아 군과 싸운다. 페르시아 군은 그리스 연합군보다 20배나 많았다. 이틀 동안 페르시아 군은 이 적은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한다. 꾀가 많았던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 출신의 배신자에게 연합군의 진지가 있는 테르모필레 지역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을 묻는다. 곧, 페르시아 군이 이 길을 따라 진군하게 된다. 그리스 연합군은 레오니다스 왕에게 퇴각하자고 하였지만, 그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과 남아서 전투를 치루게 된다.

레오니다스가 그리스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때, 그리스 연합군의 함대는 아르테미시움지역에 정박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있다가 그리스 연합군을 돕기 위해서였다. 크세르크세스는 이 전략을 간파하고 그의 함대를 이 지역으로 보낸다.

페르시아 함대는 아르테미시움 지역에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서 많은 수의 군대와 배를 잃게 된다. 또한 그들은 아르테미시움에 도착해서 전투를 벌였을 때 또 다시 배를 많이 잃게 된다. 이 러한 손실은 페르시아 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한편,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군이 에게해 지역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에 항복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배로 이 손실을 메꾸었다고 그의 책에서 주장한다.

그리스 함대는 테르모필레 전투의 패전 소식을 접한 후에는 자신들 국가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아르테미시움에서 퇴각하여서 살라미스 섬으로 이동하게 된다.

해전

전력비교
살라미스해전 전력비교
그리스함대 페르시아함대
사령관 총사령관 : 유리비아데스(스파르타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아테네 사령관)
총사령관 :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
함대 300~370척의 삼단노선과 50여척의 펜테콘테선 800척(가장 적은 추정량 : 650 삼단노선, 그리스 학자들은 1000척이 넘었다고 주장함.)
전략회의
아테네인들이 살라미스 섬으로 피신한 후에 그리스 연합군은 작전회의를 열었다. 스파르타 인들은 살라미스 인근 이자 그들의 영토와 가까운 코린트해협으로 퇴각하자고 주장하였다. 아테네인들은 그곳으로 퇴각할 경우 살라미스 섬으로 피신해 온 아테네 인들이 페르시아 군의 희생양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회의는 점차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회의 장소를 떠나서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섬에 남도록 할 방법을 궁리했다. 마침내 그는 그의 페르시아 출신 충복을 크세르크세스에서 보낸다. 그의 노예는 그리스 군의 연합이 와해되고 있으며 크세르크세스가 지금 그리스 연합군을 공격하면 페르시아 군이 이길 수 있다고 전하도록 하였다.

크세르크세스는 곧 살라미스 섬의 그리스 연합군을 공격하도록 명령한다. 페르시아 군이 살라미스를 향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그리스 연합군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전투를 준비했다.
테미스토클래스 석화상 테미스토클래스

그리스 군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크세르크세스는 전투를 한눈에 보고자 아이가레오스 산에 오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최측근들은 그리스 전함을 누가 제일 많이 부시는지 적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
페르시아 군은 함대의 몇 대를 살라미스 섬을 우회하여 그리스 군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남은 함대는 살라미스 섬 앞의 작은 섬 때문에 두 부대로 나누었다. 살라미스 해협으로 페르시아 함대가 들어갈 동안 그리스 연합군은 전선을 가다듬고 있었다.
페르시아 함대가 들어갈 동안 그리스 연합군은 전선을 가다듬는 모습
그리스 군은 페르시아 함대의 위용에 겁에 질려서 퇴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페르시아 함대는 섬 때문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적이 퇴각한다고 생각하여서 한꺼번에 진입을 시도 하였다. 곧 페르시아 함대는 아군 배와 서로 섞여서 전진하지도 퇴각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페르시아 함대는 아군 배와 서로 섞여서 전진하지도 퇴각하지도 못하는 상태 모습
페르시아 함대의 배들이 진입하자 그리스군은 배를 빨리 선회하여서 먼저 공격하였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은 청동으로 만든 배의 머리로 들이 받아서 적 함을 부시도록 하여 함대의 전열을 흐트러 뜨리는 것이었다. 그리스 군은 페르시아 함선들을 부시기 시작 하였고 페르시아 함대를 둘러쌌다. 페르시아 군이 퇴각 하려 하면 뒤에 있던 페르시아 군에 막혀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40 척을 잃은 반면 페르시아 군은 200척을 잃었고 모두 바다에 가라앉았다.
페르시아군과 그리스군 대치 모습

크세르크세스는 전투가 끝날 즈음에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였다. 사실, 그의 이번 그리스 침공의 목표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이미 이룬 상태였다. 그의 휘하 장수들은 그리스에서 퇴각하자고 왕께 건의를 하였고 그는 퇴각하기로 결정하였다. 크세르크세스는 남은 페르시아 군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결과

아테네가 이 해전에서 승리를 이끔으로서 아테네의 황금기가 시작 되었다. 이 전투 후에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를 다시 공격 하였으나 그리스 군은 다시 그들을 무찔렀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끝날 무렵 아테네 인들은 아테네 제국의 초석을 만들어 갔고 아테네는 곧 지중해의 힘 있는 국가가 되었다. 현대 그리스 해군은 이날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매년 9월 12일에 기념식을 연다.

반면, 페르시아 제국은 전투 이 후에 쇠약해져 갔고, 식민지 지역에서 더욱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페르시아 제국이 150년 더 지속 되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참고자료

영화
  • 300(2006), Warner Bros. Pictures
  • 헤로도투스의 역사책에서 본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 :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책을 조지 윌리암 콕스가 풀어 쓴 책.
  • 살라미스 해전 : 베리 스트라우스가 쓴 것으로 시몬과 슈스터에서 2004년도에 출판한 책.
  • 고대 그리스 백과사전 : 니겔 가이 윌슨이 2006년도에 출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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