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개요

우리 역사 속에 거북선이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초기이다. 1413년(태종 13)에 “국왕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태종실록 』권25, 태종 13년 2월 계사)는 기록이 있다.

또 1415년(태종 15년)에는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올린 상소 중 병비(兵備)에 대한 내용에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히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태종실록』권30, 태종 15년 7월 을미)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 초기에 거북선에 대한 구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다.

그 후 180여 년간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이 쓴 임진왜란 당시의 일기인 『난중일기』2월 8일 기사에 “거북선에 사용할 돛베 29필을 받다”라는 기록이 있고, 이후 3월 27일에는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을 시험하였으며, 4월 12일에는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ㆍ현자포를 쏘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순신이 해전에서 승리한 후 올린 장계 등에도 거북선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고,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의 머리를 붙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서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되었는데 이번 길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 먼저 거북배로 하여금 적의 층루선 아래로 곧 바로 다다르게 하여 용의 아가리에서 현자대포알과 황자대포알을 치켜 놓았습니다. 또 천자대포와 지자대포에서 대장군전을 놓아 적선을 깨어 부수었습니다. (1592년 6월 14일 당포해전 장계)

이번 전투에 돌격장이 거북선을 타고 나왔습니다. 먼저 거북배로 하여금 적 선단으로 돌진하게 하여 먼저 천자대포 그리고 지자대포, 현자대포, 황자대포 등 여러 가지 대포를 놓았습니다. (1592년 6월 14일 사천해전 장계)

거북배로 하여금 먼저 돌입하게 하여 천자대포, 지자대포, 현자대포를 놓아 큰 적선을 꿰어 뚫고 돌격장이 탄 거북배가 또 적의 층각선 아래로 다다라 대포를 치켜 놓아 그 배의 대장이 앉아 있는 층각을 깨어 부수었습니다. (1592년 6월 14일 당항포해전 장계)

한편 다른 문헌기록에 보면 당시 실현되지는 못하였으나 거북선의 유형에 속하는 배가 따로 구상된 예가 있다.
이미 이순신이 용맹을 떨치고 있던 1592년에 세자를 호종했던 이덕홍이 왕세자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귀갑선의 전법과 귀갑선의 이로움을 아뢰고 있다.
그는 귀갑선의 체제를 “등에 창검을 붙이고 머리에는 쇠뇌를 매복시키고 중간부분에 판옥을 지어 사수를 그 속에 두고.......”라고 하였고 또 “듣건대 호남의 장수들이 이것을 써서 적선을 크게 무찌르고 있다.”고 언급한 뒤 이듬해 왕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귀갑선의 구상도를 첨부하여 그것의 제작을 건의하고 있다.(『간재집(艮齋集)』권2)
전라좌수영 거북선- 이충무공전서에 있는 그림 전라좌수영 거북선- 이충무공전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이 건조한 전선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굴된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거북선은 일반적인 외부의 형태와 전투력에 관해서만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 건조에 필요한 세부적인 치수에 대해서는 기록한 것이 없다.

따라서 태종 때의 거북선과 이순신이 말한 거북선과의 관계도 확실히 알 수 없고, 단지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이순신의 고안에 의해서 군관 나대용(羅大用) 등이 실제로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정도이다.
통제영 거북선- 이충무공전서에 있는 그림 통제영 거북선- 이충무공전서
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돌격전선으로서 기능을 발휘함에 따라 전란 후에는 그 모양이 조금씩 변하여 용머리[龍頭]는 거북머리[龜頭]로 되고, 치수도 일반적으로 장대(長大)해지는 등 차차 크게 건조되었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200여 년이 지난 1795년(정조 19)에 정조의 명에 따라 이순신과 거북선에 관한 자료를 총망라하여 수집·정리하여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어느 정도 기록되어 있다.
거북선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상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옆에서 바라보는 이순신종가거북선 그림 이순신종가거북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이 건조한 전선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굴된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거북선은 일반적인 외부의 형태와 전투력에 관해서만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 건조에 필요한 세부적인 치수에 대해서는 기록한 것이 없다.

따라서 태종 때의 거북선과 이순신이 말한 거북선과의 관계도 확실히 알 수 없고, 단지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이순신의 고안에 의해서 군관 나대용(羅大用) 등이 실제로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정도이다.
정면 오른쪽에서 바라보는 이순신종가거북선 그림 이순신종가거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