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역사

해동역사(海東繹史)

『해동역사』는 조선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필사본으로 85권 6책이다. 조선 정조·순조 때의 사학자 한치윤이 저술한 본편 70권과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지리고〉를 보충한 속편 15권 6책으로 되어 있다. 조선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등의 서적은 물론 중국의 사서 523종과 일본의 사서 22종 등 550여종의 외국 서적에서 조선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세기(世紀)와 지(志) 및 전기(傳紀) 부분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다. 체제는 기전체(紀傳體)이다.

세기는 권1∼16으로 단군으로부터 고려까지의 역대 왕조에 관해 서술하였다. 지는 권17~59이며 권17은 성력지(星曆志), 권18∼21은 예지(禮志), 권22는 악지(樂志), 권23은 병지(兵志), 권24는 형지(刑志), 권25는 식화지(食貨志), 권26∼27은 물산지(物産志), 권28은 풍속지(風俗志), 권29는 궁실지(宮室志), 권30∼31은 관씨지(官氏志), 권32는 석지(釋志), 권33∼41은 교빙지(交聘志), 권42∼59는 예문지(藝文志)이다. 그리고 권60은 숙신씨고(肅愼氏考), 권61∼66은 비어고(備禦考)이며, 권67∼70의 인물고(人物考)는 전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속편 15권은 모두 지리고(地理考)이다.

이 책의 권29, 주거(舟車)조에 거북선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충무공전서』의 일부 순서를 조정한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의 배는 그 모양이 정자(亭子)와 같다. 위에는 띠풀을 겹쳐서 덮었고, 아래에는 무늬가 있는 자리를 깔았으며,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는 단청이 찬란하다. 사면은 모두 가렸으며, 흰 장막을 드리웠다. 『언폭담여(偃曝談餘)』

조선의 거북선[龜船]은 베로 만든 돛[布帆]을 마음대로 세우고 눕힐 수가 있어서 바람이 거꾸로 불거나 조수(潮水)가 얕아져도 갈 수가 있다. 『해방의(海防議)』

살펴보건대, 거북선은 본조(本朝)의 충무공 이순신이 만든 것이다. 공이 전라도좌수사가 되어 왜적이 장차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는, 지혜를 써서 큰 배를 만든 다음, 배 위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는 열십자로 좁은 길을 내어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게 하고, 그 이외의 부분은 모두 칼송곳[錐刀]을 깔았다. 그리고 앞부분은 용머리로, 뒷부분은 거북의 꼬리로 모양을 만들고, 총구멍을 전후좌우에 각각 6개씩 만들어 이곳을 통하여 큰 탄환을 쏠 수 있도록 하였다. 적을 만나면 거적으로 위를 덮어 칼송곳을 가리고 선봉이 되었는데, 적이 배에 오르려고 하다가는 칼송곳에 찔려 죽고, 와서 엄습하려고 하면 한꺼번에 총을 쏘았으므로, 가는 곳마다 휩쓸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이에 임진년의 전란에 크고 작은 싸움에서 이것으로 공을 거둔 것이 아주 많다. 배의 모양이 엎드려 있는 거북의 모양과 같으므로 거북선이라 이름을 붙였다. 일찍이『충무공전서』를 상고해 보니, 거북선의 제도는, 저판(底版) -세속에서는 본판(本版)이라고 한다.- 은 열 쪽을 이어 붙였는데, 길이는 64척 8촌이고, 머리 부분의 너비는 12척, 허리 부분의 너비는 14척 5촌, 꼬리 부분의 너비는 10척 6촌이다. 좌우의 현판(舷版) -세속에서는 삼판(杉版)이라 한다.- 은 각각 일곱 쪽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7척 5촌이고, 맨 아래 첫째 판자의 길이는 68척이며, 차츰 길어져서 맨 위 일곱 번째 판자의 길이는 1백 13척이고, 두께는 모두 4촌씩이다. 노판(艣版) -세속에서는 하판(荷版)이라고 한다.- 은 네 쪽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4척이고, 두 번째 판자 좌우에 현자포(玄字砲)의 구멍 1개씩을 뚫었다. 축판(舳版) -세속에서는 역시 하판(荷版)이라고 한다.- 은 일곱 쪽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는 7척 5촌이고, 윗부분의 너비는 14척 5촌, 아랫부분의 너비는 10척 6촌이며, 여섯 번째 판자 한가운데 지름이 1척 2촌이 되게 구멍을 뚫어 키[舵] -세속에서는 치(鴟)라고 한다.- 를 꽂아 놓았다. 좌우의 현(舷)에는 난간(欄干) -세속에서는 신방(信防)이라 한다.- 을 설치하였고, 난간의 머리 부분에는 횡량(橫梁) -세속에서는 가룡(駕龍)이라고 한다.- 을 가하였는데, 바로 노판의 앞부분에 닿게 되어 마치 소나 말의 가슴에 멍에를 맨 것과 같다.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그 주위에 패(牌)를 둘러 꽂았으며, 패 위에는 또 난간 -세속에서는 언방(偃防)이라 한다.- 을 설치하였는데, 현(舷)에 있는 난간에서 패(牌)에 있는 난간까지는 높이가 4척 3촌이다. 패에 있는 난간의 좌우에는 각각 11쪽의 판(板) -세속에서는 개판(蓋版)이라 하고, 또 귀배판(龜背版)이라고도 한다.- 을 고기비늘처럼 서로 마주 덮었다. 배의 등에는 1척 5촌의 틈을 내어 돛대[桅]를 세웠다 눕혔다 하기에 편리하게 하였다. 뱃머리인 노(艣)의 부분에는 거북머리를 설치하였는데, 그 길이는 4척 3촌이고, 너비는 3척이다. 그 안에서 유황과 염초를 태워 벌린 입으로 연기를 안개처럼 내뿜어 적들을 혼미하게 하였다. 좌우의 노(櫓)는 각각 10개이고, 좌우의 패에는 각각 22개의 포를 쏘는 구멍을 뚫었으며, 12개의 문을 만들었다. 거북머리 위에는 2개의 포를 쏘는 구멍을 뚫었고, 그 아랫부분에 2개의 문을 냈으며, 문 옆에는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이 1개씩 있다. 좌우의 복판(覆版)에도 각각 12개의 포를 쏘는 구멍을 뚫었고, ‘귀(龜)’ 자를 쓴 깃발을 꽂았다. 좌우의 포판(鋪版) 아래에 방이 각각 12칸이 있는데, 2칸은 철물을 보관하고, 3칸은 화포, 활, 화살, 창, 칼 등을 보관하며, 19칸은 군사들이 쉬는 장소로 삼았다. 왼쪽 포판 위의 방 1칸은 선장이 거처하고, 오른쪽 포판 위의 방 1칸은 장교들이 거처한다. 군사들은 쉴 때에는 포판 아래에 있고, 싸울 때에는 포판 위로 올라와, 모든 포 구멍에 대포를 대어 놓고 쉴 새 없이 재어서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