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이씨

덕수이씨

덕수이씨의 시조는 고려시대 신호위중랑장(神虎衛中郞將)을 지낸 이돈수(李敦守)이다. 이돈수나 그의 선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1218년 거란의 침입 때 출정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2세조 이양준(李陽俊)은 무관직인 정4품 보승장군을 역임했다. 3세조 이소(李劭)는 고려 고종 때에 남성시(南省試)에 급제하여 전법판서(典法判書), 지삼사사(知三司事), 세자내직랑 등을 역임했다. 4세조 이윤번(李允蕃)도 문과에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5세조 이현(李玄)은 벼슬이 없었으며, 6세조 이공진(李公晉)은 수사재시사(守司宰寺事)를 지냈는데 이는 사재시에서 근무했던 잡직장교였다. 이상 6세조까지 고려시대 선조들을 살펴보면, 1세와 2세는 무관직, 3세와 4세는 문과에 급제한 문관이었다. 그러다 5세에서는 벼슬이 없고 6세에서 무관으로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이순신의 선조는 무반에서 시작하여 문반과 무반을 교차하다가 고려 말기에는 한미한 무반이 되는 부침을 겪었다.
덕수이씨열전 - 해군사관학교 책자 표지 덕수이씨열전 - 해군사관학교

이후 4대조 때 조선왕조의 개창을 맞이하면서 덕수이씨는 문반으로서의 두각을 나타내 조선시대에 105명의 문과급제자와 정승 7명, 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을 배출해 냈다. 그중에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충무공 이순신 등과 같이 뛰어난 인물이 들어 있다.

덕수이씨는 중종∼영조대에 이르는 약 300년간 성세를 보였는데, 상신·대제학·청백리에 오른 인물을 보면 중종 때의 대제학·좌의정 이행(李荇), 명종 때의 영의정 이기(李芑), 선조 때의 대제학 이이(李珥), 인조 때의 대제학 이식(李植), 숙종 때의 대제학·좌의정 이단하(李端夏), 대제학·영의정 이여(李畬), 영조 때의 좌의정 이집(李潗)·이은(李溵), 정조 때의 영의정 이병모(李秉模), 선조 때의 대사헌·청백리 이유중(李有中), 인조 때의 예조판서·청백리 이안눌(李安訥) 등이며, 그중 이식과 이단하는 부자 대제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