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속의 이순신

우리 역사상의 장수들로서 보통때에 조그만 적을 만나 공로를 세우고 이름을 날린 이는많았지만 공과 같은 이는 나라가 고작 쇠약해지고 전쟁을 꺼려하는 때를 당하여 천하에 더할 수 없이 강한 적을 만나서 크고 작은 수십 번 싸움에 모조리다 이겨내어 서해를가로막아 적들이 수륙으로 병진할 수 없도록 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근본을 삼은것이니, 저 한 때의 공을 세운 신하 들로서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의 몸을 세우는 절개와 국란에 죽는 충성과 또 행군하고 용병하는 묘리며 복잡한 사무등을 처리하는 지혜는 이미 다 보고 아는 일이라 비록 옛날의 명장이나 어진 장수들로서 백년에 한 둘 밖에 나지 못하는 그런 인물로도 이 분을 넘어 설 이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인조때 대제학,이식>

나는 그대를 버렸건만 그대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일등공신으로 뽑았건만 포상이 오히려 부족하다.
<조선시대 제14대왕, 선조>

절개에 죽는다는 말은 예부터 있지마는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분에게서 처음 보네.
<조선시대 제19대왕, 숙종>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 바로그것에 의함이라. 내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한 비명을 짖지 않고 누구 비명을 쓴다 하랴.당나라 사직을 안정시킨 이성과 한나라 왕실을 회복시킨 제갈량을 합한 분이 충무공이다.
<조선시대 제22대왕, 정조>
제22대왕 정조 영정 제22대왕 정조

공은 엄하고 진중하여 위풍이 있는 한편 남을 사랑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며 은혜와 신의가 분명하고 식견과 도량이 깊어 기쁨과 노여움을 잘 나타내지 않았다. 일찍이 하는 말이“대장부 세상에 나서 쓰이면 죽을 힘을 다해서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뜬 영화를 탐내는 것은 나의 부끄러워 하는바라” 하였다.
<조선시대 인조때의 승지, 최유해>

이순신은 수근 한 선비와 같았으며 말과 웃음이 적었다. 재주는 있으되 명이 없어 그 가진재주의 백에 하나도 미처 펼치지 못했다.
<이순신의 벗이며 영의정,유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