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지역

  • 백의종군
  • 백의종군로
날짜별 백의종군로 장소
1597년 7월 21일 7월 22일 7월 23일
사천 곤양, 남해 노량 사천 곤양 사천 곤명
충무공은 옥종의 이희만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7월 21일 곤양군에 이르렀다. 군수 이천추가 군에 있고, 백성들도 본업에 많이 힘써 혹 이른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도 하고, 혹 보리밭을 갈기도 하였다고 했다.

오후에 노량에 이르러 패전상황을 보고 받고 거제 배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22일 남해현감 박대남을 병 문안하고 오후에 다시 곤양에 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23일 십오리원(곤명면 봉계리)에 말을 잠시 쉬게 하고 굴동 이희만 집으로 가서 묵었다.
충무공은 21일은 거제 배위에서 자고 22일은 곤양군 관아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사천지역의 주요지점으로는 1)곤양군 관아 2)십오리원이 있다.
백의종군로

양군 관아 - 7월 22일 묵은 곳

충무공이 7월 22일 하룻밤을 보낸 곳은 곤양군 관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곤양면 사무소 입구에 사천문화원에서 세운 이충무공 백의종군 행로지 비(李忠武公 百衣從軍 行路地 碑)가 있다.

충무공은 임진왜란 중 몇 번 곤양을 거쳐 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이 행로지 비는 모함으로 모든 관직이 삭탈된 상태로 권율 도원수 아래에서 백의종군하던 중 원균이 왜에게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졸 수명(9명)과 곤양을 거쳐(1598.7.21~23) 현지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돌아가던 중 곤양에서 일박한 기록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천문화원에서 세운 비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이충무공 백의종군 행로지 비석 이충무공 백의종군 행로지 비석
충무공이 하룻밤을 낸 관아는 지금 천연기념물 제287호로 지정된 곤양 성내리 면사무소 정문 앞에 있는 비자나무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된다.

비자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되었는데, 본래 이들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옛 곤양군 시절(1419~1914)인 당시 읍성안에 관아(官衙 : 관청)의 건물이 즐비해 있던 그 가운데 하나인 형방(刑房)터였다고 전해지며, 그 당시 형방 앞뜰에 심었던 것이 자라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보는사천 곤양면 비자나무 사천 곤양면 비자나무

십오리원

충무공이 말을 쉬게 한 십오리원은 지금 곤양면 봉계리이다. 조선때 완사역(浣沙驛)에 딸린 봉계원(鳳溪院)이 있었으므로 원(院)이 소재지(所在地)란 뜻에서 나온 동명(洞名)이 원전(院田)이며 지금도 원전으로 부르고 있다.

충무공(忠武公)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삼가(三嘉)에서 노량(露梁)쪽으로 갈 적에 수군패보(水軍敗報)를 들은 십오리원(十五里院)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院田)이다.
봉계리(鳳溪里)의 유래는 앞 산의 봉알자리(飛鳳抱卵)와 초량천(草梁川)의 내가 흐르고 있으므로 봉계(鳳溪)로 명명(命名)된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h3>십오리원</h3>

십오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