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 막바지와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 전야의 상황
  • 노량해전이 시작되었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에서 노량해협의 사나운 물결도 숨을 죽였다. 핏빛 바닷물과 포연, 불화살이 밤하늘을 수놓았던 그 날을 생각하며 전투상황을 알아보자.

노량해전 막바지와 이순신 장군

노량에서의 막바지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휘와 독려하는 전투모습을 알아보자.
노량해전은 좁은 해협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일본의 조총 사거리[射距離탄알, 포탄, 미사일 따위가 발사되어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벗어나 먼 거리에서 조선수군의 막강한 함포를 동원한 함대함[艦對艦함정이 함정을 상대함] 전투를 하기에는 어려워 아군의 손실도 깊이 생각해야 하였다. 그렇지만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사전 준비로 가까운 거리에서 화공(火攻)전술을 펼치니 일본 전선은 크게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화공전술에 큰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후퇴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이 관음포였다. 일본 수군은 밀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강진만으로 탈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 전선들은 관음포가 맞은편 강진만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우왕좌왕하는 동안 일부 전선은 갯벌에 앉았거나 암초에 걸리고, 움직임이 가능한 일본 전선들은 서로 뒤엉키면서 부딪혀 더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갯벌에 주저앉은 일본 전선의 패잔병들은 앞을 다투어 남해섬으로 상륙하여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나머지 일본 전선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니 전투는 더욱 격렬해졌다.

사생결단으로 달려드는 일본군과 한 명의 침략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조선 수군과의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관음포 바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체가 쌓이기 시작하였고 붉은 피가 바다를 물들였다.
일본군과 조선수군의 진격로 일본군과 조선수군의 진격로
“둥! 둥! 둥!”
이순신 장군의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일본군은 불에 타 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일본군은 북소리에 묻혀 날아오는 조선 수군의 포탄과 화살에 공포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앞장서 추격하던 군관 송희립이 일본군의 조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 모두에게 더욱 분발하라는 북소리를 울렸다.

일본군은 마지막 저항을 계속 하면서 도망갔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미 지형과 물때를 모두 분석하고 있었기에 일본군을 섬멸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 독려하였다.
일본전선 도주로 일본전선 도주로
전투를 독려하는 동안 해는 중천에 솟아올랐고, 이순신 장군은 선두에 서서 추격을 감행하니 해남 현감 유형, 당진포 만호 조효열, 진도 군수 선의경, 사도 만호 김성옥의 전선들도 뒤따랐다. 그리고 여러 전선에서 지자, 승자, 각종 총통을 일시에 집중 사격하니 일본군은 진퇴유곡[進退維谷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할 수 없는 궁지]에 빠져 마지막 발악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부하 중 훈련원 판관 김덕방(金德邦)은 가장 선봉에서 싸워 일본전선 수십 척을 쳐부수었으며, 이충실(李忠實), 정응(鄭鷹) 등은 본인이 부상을 입은 가운 데서도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위 글은 노량해전의 막바지 부분을 묘사한 글이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까지 조선 수군을 독려하여 싸우는 모습을 떠 올리며, 만약 여러 분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일본 수군을 맞아 어떻게 싸웠을지 멋진 작전을 세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