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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천년여행, 고사찰을 찾아서] (8)김해 장유사, 하동 칠불사

명예기자 장원정 리포트 

고사찰  

[명예기자 장원정]공식적으로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년) 2년인 372년이다.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이 승려 순도(順道)를 고구려에 보내서 불상과 불경을 전해 주었고 이후 소수림왕은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건립하고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였다. 백제의 불교 수용은 침류왕 때에 이루어졌다. 침류왕 원년(384년)에 남중국의 동진(東晋)에서 서역 출신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바다를 건너오자 국왕은 궁궐로 맞아들여서 극진히 공경하였다. 다음 해에는 수도 근처의 한산(漢山)에 절을 건립하고 열 명을 출가시켜 거주하게 함으로써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였다. 한편 반도의 동남쪽에 자리 잡아 대륙과의 소통도 없고 문화적으로 뒤쳐졌던 신라는 5세기 초부터 고구려를 통해 불교가 전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고구려나 백제처럼 쉽게 수용하지 못하다가, 법흥왕(재위 514~540년) 14년에 이르러 비로소 공인되었다. - 그 과정에 우리가 익히 국사 시간에 배운 이차돈의 순교가 일어났다

 

고사찰전라남도 영광 법성포에 위치한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모습

 

이처럼 공식적인 기록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모두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이런 공식적인 기록과 달리 불교계 일부에서는 불교 남방 전래설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중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바다를 거쳐 직접 한반도로 불교가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가설이든 이런 남방 불교 전래설의 중심에는 김해가 있다. 

 

고사찰김해 장유사

 

김해시에는 '장유'라는 이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유신도시, 장유산, 장유사... 그럼 '장유'는 어떤 의미인가?

 

"저는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중략)...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신선이 먹는 대추를 구하고, 하늘로 가서 선계의 복숭아를 좇으며 반듯한 이마를 갖추어 이제야 감히 임금의 얼굴을 뵙게 된 것입니다." -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 중에서

 

김해 허씨의 시조로 가락국의 초대 왕 수로왕(재위 42~199년)의 부인이 되는 허왕후(또는 허황후)가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이때 허황옥과 함께 김해 남쪽 땅을 밟은 이들 가운데 허황옥의 오빠(일설에는 동생) '허보옥'이 있다. 허보옥 그가 '장유화상(長遊和尙)이다. 장유사는 허보옥 즉 장유화상이 창건했다고 알려졌다. 이러면 372년 공식적인 고구려 불교 전래보다 300년이나 빠른 시기가 되는 거다. 다만 역사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다. 다만 장유사의 기원에 관해서 삼국유사가 언급하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사찰장유사고사찰장유사에서 바라본 김해시와 김해 평야

 

"시조 수로왕의 8대손 김질왕은 부지런하게 다스리고 정성스럽게 도를 숭상했는데, 시조의 어머니 허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기 29년 임진년(452)에 원군과 황후가 합혼하던 곳에 절을 세우고 왕후사라 했으며, 사신을 보내 그 근처의 평전 10결을 측량하여 삼보를 공양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였다. 이 절이 생긴 지 500년이 지나자 장유사를 지었는데 이 절에 바친 전시가 모두 300결이었다" -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 중에서

 

가락국에 도착한 허보옥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간다. 훗날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오랫동안 속세를 떠나 노닐며 다시 돌아갈 모르고 입적했다長遊不返'하여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 불렀다. 그가 불도를 닦으며 세운 절이 장유사다.

허왕후는 10명의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 거등(居登)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허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許氏)을 주어 김해 허씨가 뿌리내리게 하였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성불하는데 출가한 일곱 왕자를 장유화상이 이곳에서 직접 불법을 가르쳤다.

 

고사찰장유사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장유화상 사리탑

 

장유화상은 수로왕의 명을 받들어 김해 은하사, 부산 명월사 등을 창건하여 불교를 널리 전파하며 장유사에서 수로왕의 자문에 응했을 뿐만 아니라 일곱 왕자와 오랫동안 함께 머물머 수행했다. 이후 일곱 왕자를 데리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3년간 수도하고 의령의 수도산과 사천의 와룡산을 거쳐 방장산(지리산)에 들어가 '운상원'(雲上院)을 짓는다. 여기서 참선한 지 2년째 보름날 일곱 왕자 모두가 한꺼번에 성불하게 되니 이후 운상원을 칠불선원이라 부르는데 이곳이 곧 지금은 하동 '칠불사'이다.

 고사찰하동 칠불사고사찰10월 말부터 칠불사 '보설루'로 이르는 길은 노랗게 물든다

 

"다시 삼신동(三神洞)으로 내려와서 드디어 칠불암(七佛菴)에 올랐다. 두류산에 사관(寺觀)이 삼백 칠십 개에 이르는데 기이하고 수려함이 특히 제일이니, 금벽(金碧)과 붉은 빛이 현란하여 사람의 이목을 빼앗았다."  - 김지백(1623-1671) <유두류산기> 중에서

 

지리산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한 칠불사. 화개에서 쌍계까지 10리. 쌍계에서 칠불사까지 다시 20리 길이다. 절 아래 골짜기가 구름바다에 잠기면 이곳이 구름 위로 드러나 운상원이라 불렸던 이곳은 지금도 지리산에서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골짜기다.

 

고사찰칠불사 – 동국제일선원고사찰칠불사 아자방고사찰아자방은 아쉽게도 현재 발굴조사 중이다

 

동국제일선원(東國弟一禪院)이라 불리는 칠불사는 운상선원과 더불어 '아자방'이라는 무척 독특한 선원이 있다. 아자방(亞字房, 경남유형문화제 제144호)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선방이다. 방의 길이가 약 8m로 방안 네 귀퉁이에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로 그 구조가 아(亞)자와 닮았다 해서 ‘아자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이중온돌 구조로 축조 하였는데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 동안 고루 따뜻하였다고 한다. 이런 독창적인 구조로 인해 '세계건축대사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아자방에서 참선공부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앉아 있고 눕지 말 것), 일종식(一種食, 사시巳時에 한 끼만 먹을 것), 묵언(黙言 말하지 말 것)의 세 가지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규칙을 지키면서 정진한 덕분일까? 한국 불교사의 무수한 도승들이 배출되었다.

 

고사찰칠불사 아래에 위치한 영지고사찰칠불사 영지고사찰가을 단풍 든 영지 모습

 

칠불사 아래에는 '영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의 소식을 전해 듣고 칠불사를 찾았다. 왕자를 보고자 장유화상에게 수차례 간청하였으나 장유화상은 이를 거절한다. 다만 말미에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으니 정히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전한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수로왕 부부는 연못을 만든 후에 그 연못을 보니 과연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비치니 성불한 일곱 왕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제야 왕이 크게 기뻐하여 이를 기리고자 운상원 아래 두 절을 짓는다. 왕이 거쳐하던 곳에 범왕사, 왕후가 거처하던 곳에 천비사라 불리는 절을 지으니 현재 칠불사 인근 범왕마을과 대비마을이 그곳이다.

중국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불교 전래의 기원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반면 남방 해양 실크로드를 이용한 불교전파는 실증적인 증거가 거의 없어 다양한 추측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추측만으로도 2000년 전 흔적을 더듬어 가며 남방 전래 불교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지역은 한반도에서는 오직 경남에서만 가능하다.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남방 불교 전래 흔적을 만나보는 건 어떨는지. 그 와중에 만나는 가을 풍경은 덤이다. 물론 덤치고는 많이 황홀한 덤이다.

 

참고도서

일연 지음/김원중 옮김, <삼국유사>(을유문화사, 2003)

안순형, <경남의 사찰여행>(도서출판 선인, 2015)

김종길, <지리산 암자기행>(미래의 창, 2016)

명예기자 장원정 리포트
 

[경남의 천년여행, 고사찰을 찾아서] (8)김해 장유사, 하동 칠불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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