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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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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당 곽재우장군 일대기와 생가 지키는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

의병의 역사성을 알릴 수 있는 체험 문화공원으로 조성

작성2019년 11월 12일 조회82

명예기자 강진욱 리포트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수령600년 세간리 곽재우장군 생가앞 은행나무 모습

 

[명예기자 강진욱]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망우당 곽재우장군 생가 바로 앞에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302호로 지정된 수령 600년이 넘은 노거수가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493호인 ‘의령 세간리 현고수’가 있다. 현고수(懸鼓樹)는 수령 52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로 ‘북을 매던 나무’라는 뜻인데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이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02호. 면적 326m2. 수량 1그루. 1982년 11월 4일 지정. 추정수령 550년. 지정사유 노거수. 국가 및 개인 소유. 나무높이 2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0.3m, 뿌리목 줄기둘레 11.1m, 가지밑 줄기높이 2m이다. 가지퍼짐은 동쪽 14m, 서쪽 12m, 남쪽 13m, 북쪽 13.2m이다. 

이 은행나무는 땅 위 2m 정도 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사방으로 갈라져 웅장한 수관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의병들의 군사훈련시 북을 매달았다고 하는 옆에 서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의 당산목(堂山木)으로 되어 있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은행나무의 모습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의 남쪽 가지에 2개의 짧은 가지가 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여인의 유방 같다 하여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는 이 나무에 치성을 들이는 습속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곽재우는 1552년(명종 7) 8월 28일 경남 의령현(宜寧縣) 세간리(世干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할아버지는 부사(府使)를 지낸 곽지번(郭之藩)이고, 아버지는 승지․관찰사를 역임한 곽월(郭越, 1518~1586)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다. 본관은 현풍(玄風- 지금의 경북 대구광역시 달성군)으로 그곳에서 세거한 명문이었다.

그가 태어난 의령은 외가인데, 그 뒤 그가 의병장으로 활동한 주요 지역이었고 그래서 지금 그를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런 측면은 조선시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는 1565년(13세)부터 숙부 곽규(郭赳)에게서 [춘추]를 배우면서 학문을 닦기 시작했고, 이듬해부터는 성여신(成汝信) 등과 함께 제자백가서를 널리 읽었다. 그가 나중에 도교와 깊은 친연성을 갖게 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곽재우는 1567년 15세의 나이로 만호(萬戶) 김행(金行. 본관 상산)의 둘째 딸과 혼인했다. 이 혼사는 그의 자질과 그것에 대한 인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장인 김행은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인 남명 조식(曺植, 1501~1571)의 사위였고, 따라서 곽재우는 조식의 외손사위가 된 것이었다. 손위 동서도 저명한 성리학자로 대사헌ㆍ대사성 등을 역임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이었다. 조식은 두 외손사위를 직접 선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망우집] <연보>). 인물을 보는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새로이 복원된 곽재우장군 생가

 

곽재우는 18세 때인 1570년(선조 3)부터 활쏘기와 말타기ㆍ글쓰기 등을 고루 익히고 병법서도 공부했다. 1575~76년에는 의주목사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의주에서 살았으며, 1578년(선조 11)에는 명에 사신으로 파견된 아버지를 수행해 중국 북경에 다녀왔다. 이때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은 그 뒤 임진왜란에서 그의 상징이 된 홍의(紅衣)의 옷감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문무를 함께 연마하던 곽재우는 32세 때인 1585년(선조 18) 별시에서 제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선조는 그의 답안에 불손한 내용이 있다고 판단해 그 별시의 합격을 모두 취소시켰다. 기록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는 크게 낙망했을 것이다.

불행은 거듭 찾아왔다. 이듬해 8월 6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곽재우는 선산인 현풍 신당(新塘)에서 삼년상을 치르고 1588년에 탈상했다. 36세였다.

그 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의령 동쪽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기강(岐江) 근처 둔지(遯池)에 정자를 짓고 낚시질을 하면서 지냈다. [망우집(忘憂集)- 곽재우의 문집]에 실린 <연보>에는 그 2년 동안 “강가의 정자에 있었다(在江亭)”고만 짧게 기록되어 있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생가 안채, 별당 및 이곳저곳의 모습

 

그의 처사적 삶은 세속과 어느 정도 절연한 것이었지만, 일정한 경제적 기반 없이는 영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광해군일기]에 실린 그의 졸기(卒記)에서는 이때 그가 그냥 은둔한 것이 아니라 농업경영에 힘써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기록했다(1617년(광해군 9) 4월 27일).

곽재우의 재력은 실제로 작지 않은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곽재우의 전공을 보고한 장계에서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은 그의 집안이 매우 부유했는데 의병을 모집하는 데 재산을 모두 희사(喜捨- 목적을 위해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했다고 기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의병활동에 참가한 양반들은 대부분 수백~수천 마지기(斗落)1)의 토지와 200~300명의 노비를 소유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면, 곽재우도 그것과 비슷한 경제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정한 방법이 아닌 이상 축재는 나쁜 일이 아니다. 김성일이 지적했듯이, 중요한 사실은 그런 재산을 창의(倡義)하는 데 쾌척했다는 것이다. 조선 최대의 국난은 곽재우가 은거한 지 4년 만인 1592년 4월에 발발했다. 그때 곽재우는 40세의 장년이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자 그는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섰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새로이 복원된 모습들

 

2005년 복원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생가로,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소재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형태로 꾸며졌으며, 안채·사랑채·별당·대문간채·중문간채·대곳간채·소곳간채 등 7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면적은 5,636㎡이다. 의령군은 2008년 11월부터 생가활용 및 주변정비 사업을 시작했었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g문화공원안내소

 

의령군 관계자에 따르면 의령 유곡 의병장 곽재우 장군 생가주변의 정비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의령군은 국·도비를 포함, 총사업비 23억원을 투입해 유곡면 세간리 생가주변 일원 1만9850㎡ 부지에 의병의 역사성을 알릴 수 있는 체험 문화공원으로 조성했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곽재우장군 한시

 

이를 위해 특별교부세 7억원을 교부받아 군 계획시설(문화공원) 결정 및 실시설계 용역을 추진 했으며, 군청 실과소장, 읍 면장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가졌었다. 설계 및 부지매입 완료후 곽재우 장군 관련 역사체험 및 농촌문화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 체험형 시설이 도입되고,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휴식공간 및 역사적인 의병체험 문화공원으로 남은 공사가 아직 조성중이다.

 

곽재우장군 생가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곽재우장군 동상모습

 

특히 의병 역사체험 문화공원은 활쏘기, 말 타기 체험 등 다양한 의병 관련,체험 학습거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호국 의병정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충의의 고장으로서의 이미지 확립과 자긍심 고취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군 관계자는 “사업이 완료되면 곽재우 장군 생가 숙박체험 프로그램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해 가족단위 체험관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군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계절 유난히 우뚝 솟고 짙은 노랑색을 자랑하는 600년 역사를 간직한 세간리 은행나무와 의병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위치한 곽재우 장군 문화공원을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명예기자 강진욱 리포트

망우당 곽재우장군 일대기와 생가 지키는 600년 은행나무와 문화공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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