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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년 수령의 황금빛 은행나무가 기다리는 밀양 금시당. 백곡재 가을 이야기

 명예기자 마크 

금시당 앞 은행나무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1년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중앙에서 청요직을 두루 거치던 금시당 이광진李光軫(1513~1566)은 명종 6년(1551년)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받아 이후 10여 년을 여러 고을의 현감으로 지냅니다. 명종 16년(1561년) 좌천의 성격이 짙던 지방관 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복귀, 요직으로 꼽히는 병조兵曹 좌랑佐郞, 정랑正郞을 거쳐 사간원(司諫院) 헌납(獻納),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승정원의 동부同副, 우부佑副, 좌부佐副 승지承旨에 차례로 이름을 올립니다. 하지만 좌부승지로 임명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나 급작스레 담양도호부사潭陽都護府使로 임명이 되는데 부임지로 가는 대신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낙향한 이광진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언덕 위에 휴양과 학문을 가르치기 위한 집을 지어 '금시당'이라 일컫습니다. 

 

금시당금시당 

歸去來兮 돌아가자꾸나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이 장차 황폐해질 터인데 아니 돌아갈쏘냐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 지은 귀거래사 歸去來辭(13년간의 관리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작품)의 지나치게 유명한 도입부입니다. 도연명의 대표작으로 후대 문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은 주기도 한 귀거래사의 8구가 이렇습니다.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 즉,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름을 깨달았다'. 금시당은今是堂은 이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20년간의 벼슬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광진 선생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벼슬길에 올랐던 지난날 혹은 그때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든지 후회스러움이 묻어나는 동시에 여생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확고한 신념이 드러낸 말로 짐작이 됩니다. 

 

밀양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금시당, 백곡재, 450년 수령의 은행나무(좌측에서부터)밀양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금시당, 백곡재, 450년 수령의 은행나무(좌측에서부터)

 

삶의 신념이 담긴 금시당을 지은 지 1년이 안 돼 선생은 세상을 뜨고 그의 아들 근재謹齊 이경홍李慶弘이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후진을 양성하는 강학소로 사용합니다. 임진왜란 때 밀양 부성의 함락과 더불어 이 집도 잿더미로 불타 폐허가 된 것을 선생의 5대손 백곡栢谷 이지운李之運이 1743년(영조 19) 복원하였습니다. 이후 1860년(철종 11)에는 금시당 옆으로 영조 때 영남 일원에서 교남처사嶠南處士로 알려진 백곡을 추모하기 위해서 백곡재栢谷齋를 새로 지어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금시당. 백곡재 모습을 이뤘습니다. 이 두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 전통적인 건축물로 영남지방 선비 가문의 대표적인 정자 건물(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8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금시당에서 바라본 밀양강 - 휘감아 도는 용의 모습이다 금시당에서 바라본 밀양강 - 휘감아 도는 용의 모습이다 

 

동쪽으로는 호두산, 서쪽으로는 용두산을 끼고 전면으로 밀양강이 휘감아 돌아 용호龍湖를 이룬 곳에 자리 잡은 금시당에는 이광진 선생이 손수 심었다는 450년 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은행나무를 많이 접하는 전통 건축물로는 서원이라 향교를 들 수 있는데요 공자가 야외에서 제자를 가르쳤던 곳에서 유래한 '행단杏壇'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정자인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선생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거죠. 

 

광진 선생이 손수 심었다고 알려진 450년 수령의 은행나무 이광진 선생이 손수 심었다고 알려진 450년 수령의 은행나무 


은행나무에 단풍이 들 무렵에는 금시당 방문객이 절정에 이른다은행나무에 단풍이 들 무렵에는 금시당 방문객이 절정에 이른다

 

유서 깊은 금시당이라 일 년 내내 꾸준히 발걸음이 이어지지만 11월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변해갈 무렵이면 절정을 이룹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밀양과 인근 사진가들만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노란 카펫이 깔린 금시당 모습을 담고자 부지런히 찾더니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SNS 열풍이 분 이후론 이 풍경을 놓칠세라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보니 점점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거는 이런저런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을 터인데 개인 사유지인 이곳을 흔쾌히 개방해 주는 후손분들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을 금시당 - 황금빛 정원에서가을 금시당 - 황금빛 정원에서 

 

몇 년 전을 생각하고 가족과 주말에 찾았더니 가을 인생 사진 담으러 온 사람들이 제법 됩니다. 한참을 서성이다 가족과 편안하게 담을 여지가 안 생겨 평일에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았답니다. 다행히 평일에는 조금 여유가 있더군요. 요즘은 전국 유명 관광지에서는 한복 대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복 인증샷이 대세이기도 하지요. 대부분 가정에서는 설과 추석용으로 마려한 한복이 한 벌씩은 있을 텐데요 한복 대여보다는 집에 있는 한복을 챙기는 것도 좋아 보여서 이번에는 한복을 가지고 찾았습니다. 가을이나 봄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 담고자 한다면 명절 외에는 주로 옷장에 묵혀 있는 한복을 챙기면 조금 다른 추억을 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담은 사진을 보여 주면 은근 반응도 좋답니다. 

 

금시당 앞 은행나무

 

경남에도 이름난 은행나무 길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참 많은 편입니다. 짧은 가을 날 이들을 찾아다닐 때면 늘 그 시기를 맞추기가 참 힘들더군요. 지역마다 온도도 제각각이고 같은 지역에서도 장소마다 바람 부는 양과 볕도 다 다르고 바람 한번 세게 불면 다 떨어져 버리니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찾는 거는 운에 맞기는 게 맘 편한 일이더군요. 이런 면에서 금시당 가을은 참 좋습니다. 따뜻하고 볕도 잘 들어 은행잎이 서서히 물들고 바람도 적은 편이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오래 가는 편이라서 11월 초부터 중순을 넘어 하순까지 단풍이 길게 이어진답니다. 올 해 시기를 놓친 이라면 다음 찾아오는 11월에 금시당을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랍니다. 황금빛 하늘과 땅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명예기자 장원정

 

 

450년 수령의 황금빛 은행나무가 기다리는 밀양 금시당. 백곡재 가을 이야기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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