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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리그 클래식 36전 17승 10무 9패 56득점 42실점, 리그 순위 2위, 팀 득점 공동 2위, 팀 실점 3위. 시즌 두 경기를 남긴 현재(11월 22일) 경남FC의 성적이다. 시즌 초 목표였던 1부 리그 잔류는 물론, 도민 구단으로서는 최초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얻어내는 대업을 달성했다. 괄목할만한 성과다. 남은 시즌 동안 경남FC의 관심사는 울산과의 2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2위를 차지하게 되면 2019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티켓을 손에 쥐게 된다.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선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말이다. 2위 달성, 다음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은 그 자체로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어마어마한 쾌거다. 경남FC는 도민 구단(즉 시민 구단)이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부자 구단과는 달리, 재정이 열악한 도민 구단은 팬들의 관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2014 시즌 2부 리그 강등은 사실상 경남FC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당시 축구 전문가들은 역사도 짧고 인기도 없는 도민구단 경남FC가 2부 리그 강등과 함께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실제로 2부로 강등되자마자 경상남도에서는 경남FC 구단 운영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한 후 해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도 했다. 운영 규모를 축소한다는 조건 하에 간신히 해체는 면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산소 호흡기를 단 것일 뿐이었다. 구단 운영 축소는 곧, 현 전력을 추스르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의미했다. 승격을 위해 전력 보강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선수도 팔아야 하는 실정이라니... ‘기적’ 그 이외에는 경남FC를 구원할 어떤 무엇도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모두의 예상대로 경남FC는 2부 리그에서의 첫 시즌에 하위권 성적을 거뒀고, 팀이 부진할수록 구단 해체설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러던 중 8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스타 공격수 김종부가 2015년 12월 2일 경남FC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김종부 감독이 경남FC의 반등을 이끌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로팀 지휘 경력이 없는 지도자에게 매달려야하는 경남FC의 딱한 처지만 조명될 뿐이었다.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싶다. 못한다고 질타하는 팬들의 목소리조차 그리웠던 게 당시 경남FC의 슬픈 현실이었다. 하지만 김종부 감독에게는 ‘절실함’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86년 K리그 스카우트 파동을 기점으로 내리막을 탄 이후 철저하게 비주류로 밀려난 비운의 축구인 김종부에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아마추어팀의 지도자를 역임하던 시절, 생활고를 버티기 위해 장어구이 가게까지 내야했던 김종부 감독 입장에서 프로팀으로부터 온 감독 제안은 본인 커리어에서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30년 비주류 축구 인생을 살아온 김종부 감독의 절실함은 목표 의식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경남FC 선수단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도자의 절박함과 진정성은 선수단을 일깨웠다. 첫 시즌 동안 흐트러진 선수단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힘을 쓴 김종부 호는 2017 시즌을 앞두고 해보자는 의지로 똘똘 뭉쳐있었다. 물론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축구다. 김종부 감독이 해야 했던 일은 해보자는 의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팀 전술의 구심점이 되어줄 리더가 필요했다. 그러나 재정이 약한 경남FC가 스타급 선수를 데려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종부 감독은 어떻게든 가격이 싸고 잠재성이 있는 선수를 발굴해내야 했다. 그렇게 데려온 선수가 브라질 4부 리그 출신의 94년생 공격수 말컹이었다. 말컹은 브라질 4부 리그 이투아누에서 다년간 뛰다가 2016년에 브라질 2부 리그 브라간티누로 이적하여 2경기를 소화한 선수였다. 브라질 내에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이었다. 196cm, 100kg대의 흔하지 않은 체격 조건을 가졌으나, 이를 활용할 줄 모르는 선수였다. 엘리트 축구를 늦게 접한 까닭에 기본기와 몸싸움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조건이 좋아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따라서 완성도 높은 스타 선수가 즐비한 브라질 내에서는 말컹 같은 선수에게 관심을 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경남FC는 달랐다. 아니 달라야했다. 선수가 본인의 장점을 활용할 줄 모르면, 활용할 줄 알도록 만들어야 했다. 검증된 선수를 사오지 못하는 만큼, 검증된 선수를 만들어 써야 하는 것이 경남FC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김종부 감독은 말컹의 잠재성을 끌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난생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행복감을 느낀 말컹도 강도 높은 훈련을 즐겁게 소화했다. 프리시즌 동안 살을 빼고, 기본기를 가다듬고, 축구에 필요한 기동성을 높이는 고강도의 트레이닝을 120% 소화한 말컹의 잠재성은 2017 시즌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시작부터 불을 뿜기 시작했다. 힘과 높이로 적진의 박스 안을 파괴한 말컹의 득점력은 K리그 챌린지 팀들에게는 시즌 초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선수단은 말컹의 득점을 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헌신했고, 말컹은 그런 팀원들의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어나야 했던 경남 FC와 코칭스테프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말컹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냈고, 이는 곧 2017 K리그 챌린지 우승 및 1부 리그 승격이란 결과로 이어졌다. 2017 K리그 챌린지 우승으로 경상남도 내에서 경남FC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특히 K리그 챌린지를 휩쓴 공격수 말컹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팀 해체 직전까지 갔던 2부 리그 하위권 팀이 불과 1년 만에 2부 리그 우승과 승격을 이뤄낸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경상남도민 뿐만 아니라 K리그 팬들에게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2018 시즌 강등 후보 1순위’ 이것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경남FC의 위치였다. 2018 시즌 김종부 호의 1차적인 목표는 1부 리그 잔류였다. 김종부 감독은 공격수 말컹을 보좌할 특급 도우미를 찾는데 열을 올렸다. 물망에 오른 대상은 일본의 축구 신동이라 불리던 세컨드 공격수 쿠니모토와 브라질 유망주였던 공격형 미드필더 네게바였다. 두 선수 모두 어린 시절 ‘한 때’ 주목받다가 잊혀졌다는 점에서 현역 시절의 김종부 감독과 닮은 점이 있었다. 누구보다 쿠니모토와 네게바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김종부 감독은 이들을 따스하게 보듬었다. 짧게나마 높은 잠재성을 인정받았던 선수들인 만큼, 자신감을 끌어낸다면 정점의 기량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김종부 감독은 확신했다. 그런 믿음은 2018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시즌 초부터 빛을 냈다. 국내파 선수들이 수비적으로 헌신해주고, 쿠니모토와 네게바가 말컹의 득점을 도우는 시스템이 체계를 잡은 것이다. ‘강등 후보 1순위’라던 전문가들의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 초부터 경남FC의 거센 돌풍은 K리그 판도를 뒤집어놓았다. 경남FC의 기세는 시즌 내내 그칠 줄을 몰랐다. 9월 16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으며 시즌 초 목표인 잔류에 성공했고, 11월 3일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는 위업을 달성했다(최소 3위 확보). 경남FC는 내친김에 현재 순위인 2위를 지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티켓을 따낸다는 각오다. 경상남도 전역은 현재 경남FC에 열광하고 있다. 해체설에 시달리던 2부 리그 하위권 팀이 불과 2년 만에 리그를 대표해서 대륙 최고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은 축구사를 뒤져도 나오기 힘든 기적의 스토리다. 유럽 축구의 변방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 2015~2016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시티의 우승에 충분히 비견될만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경남FC는 우리가 체감하는 이상의 놀라운 업적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꿈같은 스토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가 진짜 스토리의 시작이라 볼 수도 있다. 앞으로는 선수단의 노력만 가지고 나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결코 쉽지 않다. 경상남도의 적극적인 투자와 경상남도민들의 열열한 응원이 따라야만 선수단이 험난한 여정을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적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또 한 번의 기적을 위해, 경남 도민들이 똘똘 뭉쳐야 할 때다.
18.11.23.“그런데요, 선생님.”자녀에 대하여 막힘없이 이야기하시던 어머님이 말끝을 늘이셨다. 가만히, 이야길 기다리고 있으니 머뭇머뭇 그러신다.“엄마들끼리, 그런 소문이 돌아요. 그, 지역아동센터는 돈 없는 애들이 다니는 데라고. 제가 사정이 있어 애를 못 보긴 해도, 못 살아서 그렇게는 아니긴 한데…….” 제법 오랜 시간의 고민이 어머니의 눈길에서 느껴졌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무어냔 듯, 도도도 – 아이는 달려와 과자봉지를 뜯어 달라 성화였다. 시간은 오후 7시를 넘기고 있었다.다양한 가구형태들이 나타나고 있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누구 한 사람의 ‘전담’된 양육은 현실성이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서 제도화 된 것이 지역아동센터, 이른바 공부방이 그 전신이 되겠다. 방과 후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최소화 하고, 보호자가 온전히 가정에 있다고 판단되는 시간까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 취지이며 목적이다. 세세한 사업의 내용은 차치하고, 그냥 그것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저런 말이 도느냔 말이다.물론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교육기회와 보편화된 복지 서비스를 받으면 좋겠으나, 선택의 문제와 더불어 국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복지는 선별적일 수 밖에 없고, 그 대상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덜 한 사람들이 된다. 왜 이런 당연한 말을 하느냐 하면, 생각보다 많은 어른들이 이러한 사실에 상처받기 때문이다.“선생님, 그.. 괜찮겠죠?”어머님은 과자 봉지에 눈을 두시곤, 넌지시 이야기하셨다.‘저녁 먹어야지, 간식 안 돼.’하시며.괜찮냐는 말은, 누굴 향한 것일까. ‘돈 없는 아이들’이라는 낙인도, ‘못 사는 집’ 이라는 인식도 모두 어른들의 말인데. 가장 많이 아픈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리고 나는 왜 잠시, 머뭇거렸는가.아이들은 당연히 돈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제 활동의 주체는 아이들이 될 수 없으니,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아동복지의 대상이 되어야한다. 교육이 그렇고, 보건이 그렇다. 그럼에도 부족한 것을 가정에서 보충하고, 그런 보충이 힘들다면 국가가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복지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좀 다를 뿐이다. 그런 아이들을 자신들의 능력여부로 나눈 것은 다름 아닌 상처받은 당사자들이 아닌가.“어머님.” 제법 무겁게 입을 땠던 것 같다.“지역아동센터는 돈 없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 맞아요. 아이들은 돈이 없는 게 당연하죠.”큰 위로가 되진 못한 것 같았다.“다만, 집집이 사정이 다를 뿐이죠. 그냥 그것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신다면, 아이 볼 시간이 좀 있는 집인가 보다 하세요. 아니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여기세요. 마음이 아파 자라는 아이들까지 상처 주려나보다, 그렇게 여기세요. 그러셔도 됩니다.” 정답이 될 순 없지만, 어머님의 손짓, 눈길에 베어나온 부채감이나마 조금 덜 수 있길 바랐다. 다행이, 어머님께 그 정도는 된 모양이었다. 그럴 자격이 나에겐 없는데, 어머님은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셨다. 참 벅찬 일이다.유명한 사진이 있다. 찌를 듯한 검지로 타인을 탓한다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저를 향하고 있는 것. 아이들이 돈이 있고 없음을 나누고, 그 수준을 나누는 교육을 한다면 그 아이가 자라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인내천(人乃天)이 세상에 뿌리 박힌지 얼만데, 편견과 오만으로 자신의 아이가 부족하게 자라는 걸 바라는 이가 없길 바란다. 연일 재벌 총수일가의 비도덕적 행동과 사회가치로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의 행동이 도마에 오르고 있으며, 그것이 법적인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 세상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상식적인 행동이 법의 저촉 여부를 따져 처벌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18.07.09.교실에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살았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할 때의 설렘보다 방학을 기다리는 설렘이 더 커지는 때입니다.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같은 마음이겠지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입니다. 천진하면서도 어른스러우며 누구보다도 사랑스럽습니다. 서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매일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 활동 시간에 독서를 합니다. 물론 줄넘기도 하고 글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서를 합니다. 수업을 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도 독서를 합니다.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머리에는 까치집을 얹고 눈곱도 다 떼지 않은 부은 눈을 꿈쩍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독서를 곧잘 하지만, 몇 달 전만 해도 아이들은 책을 읽자고 하면 입이 불뚝 나와서는 책을 읽는 시늉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만화책만 보았습니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글은 대충 보고 그림만 넘겨보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흥미로운 줄거리와 그림을 통해 아이들이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만화책도 훌륭한 독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만화책에 익숙해진 나머지 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것을 불편해 하고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긴 글도 참아내며 읽고, 그 속에서 배움과 흥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조금씩 읽고 독서 감상문을 간단히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으로 독서 기록장을 검사하는 날,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서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씨는 삐뚤빼뚤 엉망인 데다가 맞춤법을 틀리는 것은 기본이고, ‘감상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은 전혀 없이 이야기의 줄거리만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흥부와 놀부(동화)를 읽고’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순간 ‘아!’ 하고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집에 혼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권씩 책을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읽었던 책을 네 번, 다섯 번씩 읽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독서를 통해 얻은 힘이 지금의 저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시각 이미지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아마 글을 읽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참고 읽어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인내를 기를 것이며 배움을 얻을 것이고 그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을 것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국어 수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1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자고 권유했습니다. 그 때 몇 명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하더군요. ‘선생님, 학원 숙제 해도 되나요?’ 라고요. 학원에서 숙제로 내어준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영어 독해를 하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이 책 속의 세상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아이들이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것이며 아이들의 감성을 자라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자꾸만 메말라 갑니다. 같은 식물이라도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것은 더 건강하고 윤이 나듯이 새싹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비옥한 마음 밭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이들의 마음 밭에는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 밭에 거름이 될 독서가 절실한 때입니다. 다가오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수학 공식을 외워 계산하고 사회 교과서의 내용을 기계처럼 암기하며 영어 문장을 낱말 단위로 쪼개어 해석하는 일은 아마 그 누구도 중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해왔던 대부분의 일들을 로봇이 대신하고 오히려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 소통하는 힘, 그리고 공감하는 힘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독서를 통해 이러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책 한권을 쥐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SNS 보다 재밌고, 게임 보다 짜릿한 독서의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저 멀리 바다 건너 폭풍우를 일으키듯, 독서의 힘은 점점 커지고 커져서 우리 모두의 환상적인 미래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저도 아침 독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왜 책 안 읽어요?’라는 우리 반 아이의 깜찍한 질문에 속이 뜨끔하여 읽다 만 책 한 권을 핸드백 깊숙이 집어넣어 봅니다.
18.06.18.지난 13일 저녁 6시 30분, 김해시 외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공간Easy’에서는 제6회 ‘경남콘텐츠포럼-콘퍼런스(콘텐츠-컨퍼런스, 이하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해 그리고 창원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11명의 청년들이 모여 세계 최초 릴레이 웹드라마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콘퍼런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월 두번째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악, 사진, 영상, 글쓰기 등 무언가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관심을 가진 청년들을 한자리에 모아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 그 후 매달 프로그램을 만들고 행사를 치러내면서 여러 참가자들의 의견을 모아 실습 중심의 현재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다.‘콘텐츠’라는 말은 우리가 아주 자주 접하는 말이지만 딱히 정의 내리기 힘든 말이다. 그런 단어가 붙은 ‘콘텐츠 포럼’을 연다고 하니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 하기도 했다. 소위말해 ‘전문가’들만 모이는 자리로 생각하고는 관심이 있어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우리가 생각하는 ‘콘텐츠’는 우리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좋아하는 형태의 결과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정의했다. 가령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어 ‘디지털 음원’으로 만든다던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청년이 그 과정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린다던지, 지금 내가 콘퍼런스에 대한 활동을 글로 써서 온라인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행위다.콘퍼런스에는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그리고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꼭 직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취미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어린 친구들의 장래희망 1위가 예전 ‘연예인’에서 현재 ‘BJ’로 바뀌었다고 하듯 콘텐츠 소비매체가 ‘TV’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본질은 같다. 자신이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콘퍼런스를 6개월째 운영하면서 우리지역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환경이 그렇다보니 실제로 함께 할 청년들이 많이 없는것도 아쉽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나조차도 ‘좀 더 많은 청년들이 있는 지역으로 가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꼭 이런 일을 하려면 집을 떠나야만 하는건가?매달 열리는 콘퍼런스 행사에는 10명 남짓한 청년들이 모인다. 욕심 같아서는 좀 더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좀 더 풍성한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 보고 싶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곳곳에 재야의 고수처럼 숨어서 활동하고 있었다는게 증명이 됐다는 거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 콘퍼런스의 ‘진정성’이 통할 때 더 깊이 숨어 있는 고수들도 나올거라 믿는다.지역에 있는 대학에 ‘콘텐츠’ 관련학과가 있다. 인제대 영상 디자인학과 그리고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콘텐츠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난다.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지역엔 콘텐츠로 먹고 살 곳이 없다.나는 지역에서 콘텐츠 스타트업을 2년간 운영했다. 열심히 회사를 키워서 지역의 청년들이 다른 지역에 나가지 않고도 우리 지역에서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역의 콘텐츠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콘텐츠 전문 인력들에 대한 대우를 일용 근로 하는 ‘용역 사원’ 취급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콘텐츠 ‘원가’의 개념도 전혀 없어서 ‘공짜’로 일 시켜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천지로 달려들었다. 그런 등쌀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야심차게 시작한 회사를 접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경남은 콘텐츠의 불모지로 불린다. 지역의 콘텐츠 산업 인프라와 관련 구성원의 마인드까지는 아직 4차 산업시대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점점 더 타 지역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지역의 인재 유출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콘퍼런스 매니저로써 가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이런 행사는 ‘어디서 지원을 받고 있냐?’고. ‘도’나 ‘시’에서 지원을 받는지 주로 묻는다. 그럴때마다 그 누구의 지원도 없이 내 주머니 사비 털어서 행사를 준비한다고 말하면 놀란다.콘퍼런스는 누군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만든 행사가 아니다. 지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행사는 누군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돈 벌기 위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진행되어도 지역 시민들에게 외면 받아도 계속 진행되지만 우리는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 것을 나누기 위해 ‘효율적인’ 행사 프로그램을 만든다.여러 번의 고민끝에 기획한 릴레이 웹드라마 제작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다. 최근 유행하는 웹드라마를 소비할 줄만 알았던 참가자들이 직접 웹드라마를 제작해보면서 시나리오, 촬영, 편집과정까지 참여해 콘텐츠 제작 역량 향상과 더불어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 만들어지는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이처럼 콘퍼런스는 지역의 목마른 청년들이 스스로 우물을 파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계속 되어야만, 우리 지역이 ‘콘텐츠 불모지’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의 ‘콘텐츠’ 인재들이 우리 지역에서도 터전을 마련하고 살 수 있어야만 우리 경남에도 ‘미래’가 있다. 아직도 3차 산업에만 집중해서는 머지 않아 인구유출로 인해 경남은 ‘유령 도시’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남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경남이야기 칼럼'의 내용은 <경남이야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05.08.가끔씩 난 아무 일도 아닌데 괜스레 짜증이 날 땐 생각해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 / 내가 걷는 거리 거리 거리마다 나를 믿어왔고 내가 믿어가야만 하는 사람들 / 그리고 나에겐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내가 처음 만난 곳 /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 곳 / 짧지 않은 스무 해를 넘도록 소중했던 기억들이 감춰진 나의 동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비.위는 1989년에 발매된 가수 김현철의 1집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동네’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이 곡은 스무 살이 된 한 소년이 어느 날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동네를 거닐다 그 해 들어 처음 내린 비를 맞는 순간 그를 둘러싼 공간과 주변의 분위기를 일종의 데자뷰처럼 느끼고, 동네와 얽혀있던 자신의 가슴 설레는 과거 기억들이 노스탤지어처럼 갑작스레 떠오르게 되는 묘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문 순간, 그 맛과 향기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에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고 그 데자뷰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최근에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이 노래와 관련된 1990년대 저의 사춘기 시절 달콤 쌉쌀음 했던 추억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어느 날 저와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친구 한 명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공동체라는 의미가 조금씩 퇴색·변화되어 감에 따라 현대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경향에 많은 영향을 받다 보니, 삼십 년 이상을 같은 동네에 살았음에도 그 친구가 같은 동네, 그것도 제가 즐겨 지나다니는 골목길에서 제가 항상 눈여겨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주 후에 다른 동네로 이사 가게 된다는 사실 또한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이사 가게 되면 뭐가 제일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냐고 물어보니, 다소 의외의 대답을 그 친구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절친의 집이 있는데, 난 그 친구의 집이 위치해 있는 골목의 모서리를 돌아 들어서는 그 순간(들)이 아주 그리울 거야”. 동네 구멍가게,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동네 골목·놀이터 등 동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인 건물·장소가 아닌,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다소 볼품없어 보이는 수많은 동네 골목들 중 하나의 이름 모를 모서리를 돌아 친구 집으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이 매우 그리울 것이라는 그 친구의 대답에서 많은 것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소만은 기억이 나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씨이익 웃고 있는 ‘체셔 캣(Cheshire Cat)’처럼 존재하지만 동시에 희발성이 너무 강해 바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기억 혹은 순간과 같은 ‘묘’한 느낌과 동시에, 그 골목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도 기억도 그리고 결국은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거라는 친구의 아쉬움 또한 말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공간 혹은 도시’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 묻어난 다양한 이야기, 그들이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들, 그리고 그런 수많은 동네들이 촘촘히 모여 각자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존해 나가는 도시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그곳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행복’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특정 장소·공간(들)에 대한 원거주민들의 과거 및 현재의 기억과 망각을 부추기는 도시 재개발·재생으로 인해 그들의 동네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들도 기억들도 그리고 그들 자신도 점점 사라지게 되고, 결국 그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네’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세대별로 경험했던 ‘동네’의 모습과 그곳에서 형성된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동네의 본질을 전원적인 마을이거나,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오는 주민들 간의 정감 있는 소통이 가능했던 1980년대 당시 작은 마을공동체의 모습에서 찾는다면, 다른 이들은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 식의 좀 더 폐쇄적이고 개인화된 모습과도 연관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터무니 있는’ 동네의 기억 : ‘터무니 있는’ 인간·사회의 기억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위의 말은 전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의회 의사당의 재건을 약속하며 행한 연설의 한 부분으로, 건축의 본질, 즉 건축이 우리 인간의 삶을 조직·디자인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승효상, 2016, p. 121).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들어낸 건축물에서 거주하면서 우리의 삶과 정체성도 이 건축물의 공간구조에 맞춰 자연스레 형성·진화해 나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건축물들이 한데 모여있는 도시를 만든 주체 또한 우리 인간이며, 그런 도시가 결국 인간의 삶, 그리고 그런 삶들이 서로 다양한 관계를 이루며 자연스레 형성된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분별한 도시계획·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공간의 고급화 현상, 다시 말해 재개발된 도심 주거지에 중·상류층이 몰려들면서 땅값과 집값이 올라 가난한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되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되는 급격한 도시화, 사회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21세기의 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네’ 그리고 ‘좋은 이웃’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회는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서울 도봉구 쌍문동 봉황당 골목’이 도시 재개발로 인해 철거가 되면서 이 동네를 살았던 등장인물들의 기억들 또한 함께 사라지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올림픽 개최도시인 서울의 미관 및 국가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1987년에 강제 철거되면서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서울 상계동의 무허가 판자촌 강체철거 장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좋은 건축가·도시계획가 그리고 좋은 건축·도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 좋은 건축가, 좋은 도시계획가는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이며 좋은 건축, 좋은 도시란 그 터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 지난 시절의 무늬와 함께 그 결이 더욱 깊어 가는 곳일 게다. 그게 터무니 있는 건축이며 그러함으로 터무니 있는 삶이 생겨난다”(ibid., p. 75). 그렇기에, 다양한 시간·기억의 결을 머금고 있는 건축,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과 건축이 한데 모여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끊임없이 교감해가며 자연스레 형성된 동네라는 ‘기억과 관계의 공동체’는 ‘팰림세스트(palimpsest: 과거의 텍스트 자국 이미지가 남아있는 양피지)’처럼 수많은 과거·현재의 기억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서로 끊임없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종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것입니다. 건축의 곡선·굴곡은 얼굴의 미소·주름살과 같습니다. 얼굴에 주름살로 미소를 드리우듯이, 건축은 굴곡진 곡선으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미소가 좋은 사람들에게 더욱더 다가가기 편하듯이, 곡선으로 자연스레 굴곡진 건축 그리고 이런 건축들로 이루어진 동네와 실핏줄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골목들이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편하고 아늑하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랜만에 여러분의 동네를 한번 거닐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바쁜 일상에 지쳐 그냥 놓쳤을지도 모를 여러분의 잃어버린 젊은 날의 기억·흔적들을 찾아서 말이죠. [참고문헌] ▪ 승효상, 2016,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파주. *경남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경남이야기 칼럼'의 내용은 <경남이야기>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8.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