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Gyeongnam Art Museum

지난전시

안창홍 : 이름도 없는

경남도립미술관은 지역 출신 작가에 대한 집중적인 고찰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매년 ‘지역작가조명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2019년도에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1세대 민중미술 작가이자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특유의 표현력으로 한국화단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지니는 안창홍(1953- )의 최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안창홍 : 이름도 없는>>전을 진행한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이름도 없는’은 작가가 최근 발표한 회화 연작의 제목이자 지난 40여 년간 작품의 주제가 되어온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과 역사 속에 희생되고 사라진 이들을 의미한다.

 

안창홍은 제도적인 미술 교육을 거부해 대학을 다니지 않고 일찍부터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역사 속 한 부분으로써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가족사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다룬 <위험한 놀이>,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의 실상을 그려낸 <새> 연작들을 발표한 안창홍은 당시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때의 활동 이력은 많은 이들이 안창홍을 민중미술 작가로 인식하게 하였다. 하지만, 주로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표현방식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와 같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던 작가들과 달리 안창홍은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특히, 약자 혹은 소수자인 사람들에 대하여 주목한 안창홍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인, 남자, 여장 남자, 청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연작들을 발표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냈다. 그리고, 2000년대 빛바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49인의 명상>과 <봄날은 간다>,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섭외해 그린 소시민들의 누드 <베드 카우치> 등 굵직한 회화 연작들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시대와 사회의 역사로 확장시켰다.

 

회화작업 외에도 사진, 드로잉, 조각 등 변화 있는 조형세계를 추구해온 안창홍은 최근에 거대한 가면을 모티프로 한 부조와 대형 입체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여 오고 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테라코타, 나무 조각 등 작은 입체작품들을 만들며 입체작업에 대하여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2016년 이후 이러한 작업에 대한 열망이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회화에서 입체로의 형식적인 변화가 커 보이지만, 안창홍의 입체작품은 FRP(유리섬유로 강화된 플라스틱)로 제작된 얼굴 형태에 페인팅을 한 것으로 캔버스가 입체로 옮겨갔을 뿐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면의 이미지와 가려지거나 텅 비어 있는 눈과 같은 표현들은 그동안 회화작품에서 인물을 표현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2차원의 화면에서 3차원으로 입체감과 공간감을 확보한 안창홍의 인물 초상들은 나아가 특정 개인의 초상이 아닌 집단적 군상을 이루며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더욱 더 아프게 드러낸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입체작품을 비롯하여 작가의 최근 작품세계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전시에는 본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대형 입체작품들과 부조, 회화작품 등 130여점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국공립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이자 작가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이다. 안창홍의 작품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작으로 발표되어왔지만, 그 근저에는 항상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과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이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오고 있는 안창홍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와 현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