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아티스트 2018 - 새로운 담지자

경남도립미술관은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N 아티스트 2018 - 새로운 담지자> 전시를 개최한다. N 아티스트의 ‘N’New, Network, Non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젊고 새로운 감각을 소유함은 물론 기존의 사회 틀을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담지자라는 부제는 ‘N’의 의미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이 말은 사회학에서 사용하는 문화 담지자에서 가져 온 것으로,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다른 사회로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현대미술의 임무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에, 여기 소개되는 작가들은 이러한 현대미술의 임무를 실행하는 수행자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단순히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의미도 가진다.

따라서 N아티스트 2018 새로운 담지자는 기성 미술이나 사회 제도에 의문을 던지는 젊은 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전시이기도 하고, 관람객과 함께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생각하는 기회를 나누는 전시이기도 하다. 참여 작가들 대부분(감성빈, 이정희, 정호, 최수환)은 경남에 연고를 두었지만, 한소현 작가는 경남에서 수차례 전시한 경험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것은 경남도립미술관이 플랫폼이 되어 젊은 작가들의 교류와 소통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감성빈 Gam Seong Bin

감성빈 작가가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의 제목은 <심연>이다. 심연(深淵)이란 빠져 나오기 어려운 곤욕이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헤어나기 힘든 절망 혹은 슬픔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즉 누구나 자기 인생의 심연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라는 것. 감성빈 작가에게 이러한 심연은 가족의 죽음이라는 충격적 상황과 연결된다. 그런데 그가 작품에서 드러내는 슬픔, 아픔, 연민 등의 정서에는 구체적인 상황이 배제되어 있다. 심연의 순간이 도래한 구체적인 상황은 사라지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정서만이 가득하다.

구체성이 제거된 심연의 세계는 흥미롭게도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심연을 떠올리게 한다. 즉 대상으로 존재하는 타인의 슬픔 속에서 자신의 슬픔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슬픔을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의 슬픔 속에 투사하고 관람객은 이렇게 구현된 작품에서 자신의 슬픔을 또 상기시킨다. 감성빈 작가의 작업 앞에서 관람객들이 멈칫하는 이유다.

 

이정희 Lee Jung Hee

 

이정희 작가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상황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 시각화하는 자유분방한 설치작업을 한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업은 그 중 본인이 직접 체험한 사회적 문제를 형상화한 것들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는 있으나 그 메시지가 직접적이거나 선동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사건을 분노보다는 슬픔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덕분에 우리는 해당 사건들에 대해 큰 거부감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대표 작품은 <관문>이다. SNS에 접속하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져 버린 세상에서 자신은 여전히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피력한다. 그 외 위안부 문제를 다룬 <피지 못한 꽃>, 세월호 사건을 관통하는 어이없는 발언 움직이지 마세요를 모티브로 작업한 <움직이면 쏜다>, 2016년 촛불집회를 뒤덮었던 초를 활용해 만든 <촛불로 만든 왕관>, 철조망에 가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한 <조망권 침해> 등이 출품된다.

 

정 호 Jeong Ho

 

이번에 출품되는 캔버스 설치 작업의 제목은 지정되지 않았다. 일명 <무제>로 표기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무제로 표기했지만 이 작업은 정호 작가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손풍경>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오래 전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작가는 병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손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후 그는 손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손의 세밀한 내부가 자연의 풍경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손풍경> 연작을 제작하게 된다.

손 풍경은 손 자체의 미술적 재현이기도 하지만 재현 너머의 무언가를 가리키는 기호이다. 작가는 이것이 결국 작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자화상이라 고백한다. 수많은 손을 그리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그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작가는 결국 하나의 자화상으로서의 손풍경임을 깨닫는다. 복잡다단한 내면의 생각과 정서를 드러내는 자화상 손풍경은 그래서 제목을 정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손 풍경 속에서 자신만의 제목을 붙여보는 놀이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수환 Choi Su Hwan

 

설치, 조각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최수환 작가는 특정 공간에 임의의 구조물을 설치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일반적인 전시 공간이 아닌 통로, , 테라스 등의 공간에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작업을 설치함으로써 이게 뭐지?’라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작품으로 즉각적으로 인식되는 것조차 지연시키는 이러한 전략은 작가에게는 하나의 유희인 듯하다.

물론 전시실 안의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천장에 매달린 가위의 위태로움은 하나의 상황을 연출한 것이지, 가위 자체가 중요한 작품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다른 작업 역시 특정 상황을 연출한다. 문을 열면 또 문이 열리고, 전시실 벽면에 설치된 팬으로 인해 먼지가 쌓이고, 방에 들어가 구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공간이 보이고, 미술관 꼭대기 테라스에는 작가가 신던 신발이 왔다 갔다 하며 위태로워 보인다.

새로운 상황이 연출된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알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한 그의 공간 연출은 마치 유령을 쫓듯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게 한다.

 

한소현 Han So Hyun

 

한소현 작가는 강남 대치동 사교육 시장의 치열함을 몸소 체험한 작가로, 어린 시절부터 행복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희망을 볼모로 끊임없는 경쟁의 장에 노출되었던 경험이 있다.(물론 우리는 모두 이와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언젠가 만나길 기대하는 행복을 위해 끝없이 현실을 소진하는 이 부조라한 삶의 문제를 한소현 작가는 딱 한 줄로 표현한다.

언젠간 행복해지겠죠

10년 간 진행해온 <언젠간 행복해지겠지요> 프로젝트의 아카이브를 만나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진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곳으로 가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에 그 길을 잘 따라왔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할 청춘이지만 왜 여전히 난 행복하지 않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누구에게 물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 작업노트 중(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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