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ositions passées

새로운 시의 시대

3.15의거 60주년 기념전 <새로운 시의 시대>

 

역사는 주목을 받을 만한 인류 행위에 대해 그 행적을 시로 노래하고 기억함으로서 불멸화를 시도해 왔다. 동시에 공동체 건국을 통해 그 정신을 기리고자 했다. 또한 역사는 시대적 정치 상황과 문화적 정서를 바탕으로 거듭 분류하고 편집하여 구체적인 보편성을 가지는 위대한 사건과 그렇지 못한 사건으로 구분 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시대는 역사를 우리의 삶으로 불러들여 긍정 부정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과오는 오늘날 우리 주변을 여전히 서성이고 있고, 역사적 비극이 이름을 달리하여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을 부정 할 수는 없다.

 

역사는 거대 담론이기 이전에 인간과 인간의 삶이며, 일상이고, 오늘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가능성과 불가능 사이에서 유동하며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결정해 나가는 중요한 단서이자,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촘촘히 현재의 자신과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새로운 시의 시대>는 3.15의거 60주년을 맞아, 역사는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전망할 수 있는 다변적 의미를 가진 기표로 작용할 수 있음에 주목하여, 역사에서 미처 드러나지 못한 원형적 동기나 실체는 무엇이며, 그 파장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작동하고 있는지를 동시대 미술로 사유해보고자 기획되었다.

 

전시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감지한 후 그것을 식별하거나 구별해내며 비로소 현재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전시는 4. 5 전시실과 중앙홀에서 열리며, 도입부인 5전시실에서 홍순명의 사이드 스케이프 연작과 이서재의 새겨진 이미지와 문장들로 축적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의 파장과 기억해야 할 것들을 감지한다. 이어 실재와 허구가 오고가며 역사를 재구성하는 박찬경의 <시민의 숲>, 순환되는 역사를 움직임으로 시각화하는 최수환의<도플갱어>는 사건 그 자체만으로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드러낸다. 전시 중앙홀에 위치한 강태훈의 를 비롯한 사물들은 현실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사회 구조의 이면이 개인의 태도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사유하게 한다. 4전시실에서는 공간의 주체자로서 군중의 움직임에 가담하여 역사적 현장의 감각을 불러내는 정윤선의 <무주의 맹시>와 환원된 역사 속에서 우리 모습과 마주하는 서용선의 인간군상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인식의 단계에 접근한다.

 

이 전시는 긍정과 부정의 역사적 산물을 나열하거나 혁명적인 순간을 기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대한 담론의 역사에서 미시적이고 사유 불가능했던 현상들을 예술적 상상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 민주, 정의 등으로 이름 지어진 시들의, 역사적 가치의 실체를 세심하게 따져보고, 그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가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이다.’라고 한 아도르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절망적인 이성 앞에서 무력해지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그 의지를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는 유지되고 우리는 살아 있다. 역사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가치의 본질과 의미는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 대한 원천적인 문제와 더불어 질문하고 써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의무가 아닐까? 비록 그것이 명백하게 기술할 수 없는 편린에 불과할지라도 넓고 깊은 역사라는 바다에서 산호와 진주를 채취하는 것처럼 작지만 간직하고 싶은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시는 모든 것을 기술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본질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오늘의 삶을 당당하게 지어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