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궐례

망궐례

조선시대 수군들이 행하던 정기적인 의례로 망궐례가 있었다. 왕과 궁궐의 상징인 전패와 궐패를 모신 객사가 있는 수영에서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수사를 비롯한 여러 군관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렸으며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을 거행하였다.
『대전회통, 1865』에 의하면 망궐례는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식으로, 직접 궁궐에 나아가서 왕을 배알하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예이다. 망궐례를 행하는 경우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망궐례 재연 모습
  • 외직에 근무하는 관찰사, 목·부사, 절도사 등이 왕이나 왕비의 탄신일을 비롯하여 정월 초하루·한식·추석 등 명절날에 왕과 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축복하면서 근무지에서 궁궐을 향해 절을 한다. 그리고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을 거행하였다.
  • 선비들이 회시(會試)나 정시(庭試)를 치르고자 서울에 왔다가 낙방하고 돌아가는 길에 궁궐을 향해 하직인사를 올리는 예가 있다.
  • 고려·조선시대에 설날, 동짓날, 중국황제의 생일에 왕을 비롯한 문무관원들이 중국 궁궐을 향해서 드리는 예가 있다. 1896년 대한제국 창건 후 폐지되었다.

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 1474』가례편에는 객사에서 치러지는 의식의 종류와 절차를 최종적으로 명문화하였는데 다음 일곱 가지이다.

  • 사신 및 외관이 정조, 동지, 탄일에 요하(遙賀:전패에 하례하는 일)하는 의식
  • 사신 및 외관이 초하루, 보름에 요하하는 의식
  • 사신 및 외관이 전문(箋文:지방관이 왕에게 올리는 글)을 올리는 의식
  • 사신 및 외관이 선로(宣勞:왕이 선지를 내려 노고를 위로함)를 받는 의식
  • 사신 및 외관이 내향(內香:왕이 내린 향)을 맞이하는 의식
  • 사신 및 외관이 교서를 받는 의식
  • 외관이 관찰사를 맞이하는 의식

여기서 사신이란 왕명으로 지방에 나가있는 관리를 가리키며 외관은 지방고을 수령이다. 모든 의식이 있을 때는 객사 정청에 전패를 모셔 놓고 사배를 하며, 따로 선로를 받거나 내향, 교서를 받을 때에는 전패 앞에 전문안이나 향안을 놓는 탁자를 놓고 이를 받는다. 전문을 올릴 때에도 일단 전패 앞에서 전문을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고 나서 관리가 전문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 모든 관원이 고을 밖 5리까지 그 뒤를 따르는 의식을 치른다. 모든 의식을 전패 앞에서 치르는 것은 마치 임금을 앞에 모시고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전패는 임금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며, 전패를 모신 객사 정청은 고을에서 가장 정중하게 모시는 건물이 되는 셈이다. 현존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인 여수 진남관이나 완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완도객사, 그리고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규모가 가장 큰 나주목의 객사 금성관은 망궐례를 올리던 곳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