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선

아다케부네(安宅型船)

16C 일본의 군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주력함이다. 아다케부네(安宅型船) 또는 장선(將船)이라고도 한다.

16세기에 일본은 축적된 수군전법과 배 축조 기술 집결하여 아다케부네라는 대형 전함을 만들어 수군의 주력함으로 활용했다. 아다케부네는 공격ㆍ방어력, 항행 성능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으며, 일본 수군을 다룬 많은 서적에서 '해상의 성'(海上之城)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아다케부네에는 여러 가지 크기가 있는데, 가장 작은 것은 500석, 일반적으로는 1,000석~2,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크기였으며, 2,000석 이상을 적재하는 초대형선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구성은 아다케부네를 기함(旗艦)으로 하여 세끼부네(關船), 고바야부네(小早船), 작은 세끼부네를 편입하여 함대를 편성하고, 이 함대에 병마와 병량을 운송하는 화물 수송 선단을 종속시키는 것이 기본 형태였다.

이물, 즉 선수(船首)가 견고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상갑판 위는 2층으로 되어 있다. 그 한 가운데 '누각'이라고 하는 사령탑이 있는데, 순판(楯板=방패)이라는 두꺼운 방패 널판으로 상갑판 위에서부터 상부의 뱃집 구조물 둘레를 대었다. 누각의 크기는 4방의 너비가 2칸(3.64미터)이며 높이는 2.5칸(4.5미터)이다.

방패판은 두께가 2치(6cm)~3치(9cm)정도 되는 박달나무나 가시나무로 판자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활과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이 방패판은 조립이 가능하며 그 일부는 판의 아래에다 돌쩌귀를 달아서 밖으로 눕힐 수 있게 되어 있다. 적선과 가깝게 붙어서 접전을 할 때 방패판을 바깥쪽으로 넘어뜨린 다음, 적선으로 올라 가는 사다리로 이용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다.

선수의 정면 방향으로는 대포를 장착한 것이 특이하다. 선수에 상자 모양의 상장판옥(上粧板屋)이 있기 때문에 이물의 상갑판의 너비가 넓다. 이처럼 정면이 넓었으므로, 대포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배밑은 석회로 물막이를 하여 견고하며 저판을 2중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몇 군데에 물을 막아주는 격벽(隔璧)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선체 일부가 파손되어 침수가 발생하였을 때에도 다른 선창(船倉)은 무사할 수 있었다. 즉, 현재의 강선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2중 저판 및 수밀격벽(水密隔璧)의 방식과 기법을 15~16세기의 일본 목조 군선에서 이미 실용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아다케부네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시작으로 구로다(黑田), 구기(九鬼), 혼다(本多) 등 여러 무장들에 의하여 건조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중소형이 많이 건조되었다.

세키부네

16세기 일본 전국시대부터 제작돼온 일본의 대표적인 군함이다. 조선(早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키부네(關船)는 아다케부네(安宅船)과 함께 전국시대 수군 함대에서 활약했던 전선(戰船)이다. 아다케부네에 비해 규모가 작고,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는 일반 배들도 1,000여 년을 계속 이어져온 통나무배, 즉 ‘고주식선체’ 구조의 기법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준구조선(準構造線)과 구조선(構造線)으로 탈바꿈하는 때였다. 선수(船首)의 모양도 상자형(箱子型)이 아니고 뚜렷하게 위로 돌출된 단일 선수재(船首材)를 가지고 있으며 뾰족한 형태로 되어 있다.

관선의 크기는 노 30척을 거는 것에서부터 노 100척을 거는 것까지 다양하였으나, 그 중에서 40척~50척을 거는 중형선이 가장 많이 건조되었다. 상부 구조나 의장(艤裝)은 안택선의 제도에 준하였으나, 누각과 쇠붙이를 두르는 장갑(裝甲) 등은 일반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노 80척을 거는 관선 이하에는 누각이 없다.

노 40척~50척을 거는 중형 관선은 방패판(防牌板)이 이물의 전면에만 설치되어 있고, 측면은 장막(帳幕)으로 대신하였기 때문에 '막장선'(幕張船)이라고 불리었다. 그 외에도 측면의 방패판에 대나무를 사용한 것도 있다.

관선은 수군함대에서 안택선을 보좌하며, 쾌속성(快速性)을 이용하여 순양함(巡洋艦)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빠르다는 의미로 '조선'(早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대형 관선에는 소노(小櫓)가 76자루 걸려 있으며 대노(大櫓)는 48자루가 걸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체 구조는 밑판/중판/상판으로 구성된 3층식이거나, 밑판과 중판을 하나로 한 2층식의 두 가지가 있다.

17세기 초에 목할법(木割法=배를 짓는 비례법)이 보급되면서 관선의 선형, 구조, 의장도 표준화되었다. 그후 강호시대(江戶時代)를 지나면서 관선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평화가 장기간 지속되었으므로, 군선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가 부족했던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고바야부네

고바야부네(小早船, 소형선으로서 빠르게 달린다는 의미의 이름)는 세키부네(關船)의 일종으로, 세키부네 중에서 가장 작은 배인 소형 세키부네(小型關船)를 이른다. 일반적으로 14척~30척의 노를 거는 소형 쾌속 세키부네(小型快速關船)을 말하는데, 쇠붙이를 나무판이나 각목 등에 붙이는 장갑장치(裝甲裝置)를 관선보다 적게 하여 보다 가벼우며, 간략하게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시창(矢倉 ; 상장 누로(樓櫓)) 대신에 반원(半垣)이라고 하는 낮은 방패판(楯板-순판)을 설치한 것도 관선과 다른 점이다.

고바야부네는 중형이나 대형 관선보다 경쾌하고 민첩하게 항해를 할 수 있으므로 척후 정찰용이나 연락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구축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공격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노 30척 정도를 가진 비교적 큰 고바야부네이라 하더라도 8자루 내외의 철포(鐵砲; 조총)를 탑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진왜란 때 당포에 나타난 왜적의 척후선을 발견하고 조선 함대에서 사후선(伺候船)으로 뒤쫓게 하였으나, 너무 빨라서 따라 잡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다케부네(安宅型船)

에도시대에 사용된 일본의 군선으로 정의 : 병사, 마필, 군량 등을 나르는 수송선이다.

니부네(荷船)는 천석선(千石船)이라고도 하는데 병사, 마필, 군량 등을 나르는 배를 말한다. '천석선'이란 ‘짐 싣는 큰 배’라는 뜻이다. 중국의 고대선이나 한국의 고대선에서도 ‘큰 배’를 ‘천석선’이라는 별칭으로 부른 것은 유사하다. 니부네는 일본 배의 대표적인 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이런 선형을 ‘변재선(弁才船)’ 또는 ‘베자이 만듦새'(ベザイ造り)라 고 불렀다.

에도시대 중기 이후부터 일본 연안을 활발하게 누비면서 양곡을 운송하던 선박이 바로 변재선이다. 크기에 따라 구분하면, 능원(菱垣), 준회선(樽廻船)이나 성미(城米), 번미(藩米) 등이 있었으며, 500석~1,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크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막부 말기에는 1,500석~2,000석을 적재할 수 있는 대형선이 많이 사용되었다.

에도시대 해운의 주력으로 등장한 변재선은 원래는 16세기 경 세도나이까이(瀨戶內海)를 중심으로 발달한 연안선 선형이기 때문에 내파성(耐波性)이 약하여 외해나 원양항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변재선은 서양식 범선과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와라'(航)라고 부르는 두꺼운 판재의 배 밑을 기본으로 하여 네다나(根棚)/나까다나(中棚)/우와다나(上棚)라고 하는 삼단의 외판을 조합하여 선체를 쌓아올린다. 따라서 종방향의 강도는 배밑과 외판(삼판)에 의해 결정되며, 횡강도는 적당한 간격으로 양현(兩舷)의 외판과 외판 사이에 굵은 선량을 가설하여 높인다. 선량은 선체가 가로로 벌어지지 않게 잡아 주는 작용도 겸하고 있다.
이와 같이 두꺼운 판재와 굵은 선량으로 구성된 선체는 상당한 강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며, 제작도 용이했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소형선에서는 적합하지만 대형선이 되면 선량과 선량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게 된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여도 선량 사이에 있는 외판은 쉽게 변형되며, 특히 철정으로 연결한 네다나와 나까다나, 나까다나와 우와다나의 연접 부분이 취약하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후의 화선은 거의 다 늑골, 또는 늑골 모양의 부재(마쓰라=松良)를 부착하여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였다.

이와 같이 대형 배를 큰 판재를 사용해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목재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회나무, 소나무, 삼나무, 녹나무, 느티나무 등과 같은 지름이 큰 거목을 얻기가 쉬웠으며 벌목을 하는 현지에서 바로 판재로 만들어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