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 전야의 분위기

노량해전 전야의 상황
  •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최후 최대의 전투였다. 전체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자.

노량해전 전야의 분위기

초읽기에 들어간 노량해전 전야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자.
사천성 시마즈 요시히로는 순천 왜교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위급함을 전달받고 먼저 군사들 중 노약자와 포로들을 일본군 집결지인 부산포로 보냈다.
그리고 고성의 타치마나 무네토라, 부산의 테라자와 마사시게, 남해의 소오 요시모토는 군사 중에서 정예 수군을 500척으로 재편성하여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사천 앞바다에서 순천을 향하여 닻을 올리고 출전하기 사작했다.

당시의 전황을 여러 기록에서 살펴보면 일본군 전선은 남해의 여러 진영에서 합한 500여 척이었고, 조명연합전선은 명나라 300여 척, 조선 80여 척으로 모두 380여 척이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온갖 노략질을 일삼은 일본군을 절대 돌려보낼 수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강한 신념과 살아서 무사히 본국으로만 돌아가면 된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생각이 임진왜란의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노량해전 하루 전의 조명연합전선과 일본 전선의 규모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