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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노익장 정차종 어르신

“건강비결이랄 게 뭐 있나? 허허 뭐든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지”

94세 노익장 정차종 어르신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는 드물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졌으나 의료기술에 기대어 질병을 앓으며 오래 사는 것일 뿐 삶의 질이 그만큼 더 좋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도 한다. 그래서 찾아봤다. 어느 TV 프로그램의 ‘자연인’처럼 굳이 자연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평범하게 장수하는 이는 없을까. 덧붙여 삶의 스토리가 남다른 이는 없을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말, 제보를 받고 달려가 봤다.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 사는 94세의 정차종 어르신은 듣는 것만 약간 불편할 뿐 허리도 꼿꼿하고 체력도 좋았다. 어르신의 긴 얘기를 듣느라 오히려 취재진이 녹초가 됐다.

 

94세 노익장 정차종 어르신2


 

일기장, 가계부 그리고 성경 필사…기록의 달인

 

어르신 연배 대부분의 삶이 그러했듯 정차종 어르신도 일제강점기를 거쳐 격동의 대한민국을 몸소 겪으며 질곡의 세월을 살았다. 남보다 덜 평범한 가족사에 외롭게 컸고, 젊은 날 돼지장사, 양봉업 등 닥치는 대로 일해서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다. 학교를 변변히 다니지도 못했다. 일제강점기, 9살 무렵인가 야간소학교를 다닌 게 학력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하고, 호탕하고, 긍정적이며, 호기심에 가득차 있다. 지금도 TV를 시청하다가도 모르는 게 있으면 벌떡 일어나 사전, 옥편을 들고 찾아본다.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기록의 달인’이다. 늘 일기를 썼고, 가계부를 썼다. 대표적인 자랑거리는 성경 필사. 취재진에게 보여준 한 아름의 공책은 400여 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성경책을 정성스레 베껴 쓴 기록이다. 글씨도 일관되고 단정하다. 매일 얼마나 필사했는지를 기록한 공책 맨 뒷부분에는 2015년 2월 19일 창세기부터 시작해 2016년 3월 10일 요한계시록까지 마무리했다고 돼 있다. 88세에 시작해, 89세에 385일 만에 썼으며, 공책이 17권, 볼펜은 수십 자루 쓰였다고 돼있다. 주일 빼고, 몸살 앓은 며칠을 빼고 하루도 빠짐없이 필사한 것이다. 모르긴 해도 보통의 교인들도 그 정도로 필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대단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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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선행, 지역 언론에 실리기도

 

매일 성경을 읽다가 필사까지 하게 된 건 당연히 신앙심 영향이겠지만, 그에겐 신앙심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젊은 날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할 때도 남을 속여야 먹고사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불의를 멀리하고 스스로 선행을 베풀겠다는 의지를 갖고 살았던 셈이다.

 

실제로 그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했다고 전한다. 쑥스러워하며 보여주는 노트에는 그의 선행기사가 스크랩돼 있다. 남한테 자신의 선행은 한사코 숨겼는데, 기사로 보도된 건 또 어찌 알고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1998년 모 지역언론 취재 수첩 난에 ‘천사 같은 할아버지’ 제목으로 실린 내용이 어르신의 사연이라고 했다. 자신도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을 텐데 방송국을 찾아 수재민을 위해 100만 원을 내놓는가하면 백혈병으로 고생한다는 소년을 위해 30만 원을 동사무소에 맡기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수준급의 짚풀공예 실력, 농기구 제작…일명 ‘정 가이버’

 

어르신은 손재주가 좋다. 보여달라고 했다. 허허 웃으시며 그간 만들어놓은 농기구며 짚풀 공예품을 자꾸 꺼내놓으신다. 쟁기, 지게, 짚신, 수수 빗자루, 양철 소쿠리 등등 수십 개다. 시연을 해 보이시기도 했다. 90세가 넘는 어르신의 솜씨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꼼꼼하다. 그만 보여주셔도 된다고 하기가 죄송스러울 지경이었다.

 

손수 만든 농기구는 더러 생활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농사를 짓고 살지만 손재주로 짚풀 공예품을 팔기도 했다. 돈 안 받고 남한테 주는 경우가 더 많은 건 물론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매우 검소했다. 딸이 준 시계의 줄 하나가 망가진 것도 버리지 않았다. 고쳐서 단 시곗줄은 원래의 시곗줄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하다. 어째서 그리 손재주가 좋으시냐했더니, “나도 모르지, 그냥 되던데”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정 가이버’라 불릴 만하다.

 

 
 

94세 노익장 정차종 어르신4


 

평생 아내 존중해 존댓말…자신만의 악보로 악기 연주

 

창원시 동읍 본포가 고향인 어르신은 18세에 윤경년(92) 할머니와 혼인했다. 올해로 결혼 72주년이다. 거실 벽 한 편엔 자식 손자 수두룩한 결혼 70주년 기념사진이 자랑스레 걸려있다. 어르신은 그 연세에도 허리가 꼿꼿하지만 할머니는 등이 굽었다. 어르신 말로는 젊은 날 갖은 고생을 해서라고 했다. 어르신에 비해 할머니는 잔병이 많기도 했다. 그래도 부부가 해로하는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서인 듯했다.

 

어르신은 할머니에게 지금도 말을 놓지 않는다. 늘 존대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해왔다. 거실에 놓인 침대 위에는 할머니가 연주한다는 피아노와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트럼펫, 색소폰, 하모니카 등이 놓여있다. 할머니도 손주가 보내준 피아노로 수십 년을 마음가는대로 연주하며 즐겁게 생활해왔다. 부부는 평생 그렇게 같이 찬송가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연주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악보를 잘 볼 줄 알아서가 아니었다. 어르신은 실제로 악보도 모른다. 나름대로 개발한 악보로 연주했다. 7음계를 숫자로 표시해서 연주하는 것이다. 도는 1, 레는 2, 미는 3 이런 식이다. 참 독특하고 기발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자신이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기도 하련만 어르신에게 불가능은 없어보였다. 색소폰을 배운 것도 87세란다.

 

 

건강 비결은 거리낌 없고 자신을 믿는 의지 가득한 삶의 자세

 

어르신은 고정적으로 먹는 약도 없고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다. 80세 넘어 짚풀 공예품을 다른 지역에 갖고 가느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있긴 했으나 병원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부지런하며, 아내와 늘 대화하고 소통한다. 측은지심을 갖고 살아간다. 남몰래 남을 잘 돕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 화나면 화를 내고 또 금방 푼다. 믿음이 있고 의지가 강하며 삶을 긍정하고 감사해한다.

 

100세를 바라보는 데도 어르신이 건강한 건 이런 영향이 아닐는지.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는 건강비결이다. 어르신도 말한다. “건강 비결이 뭐 있나. 마음에 거리끼는 것 없이,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저 열심히 살았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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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여러분의 건강한 사연을 기다립니다.

도민과 나누고 싶은 장수사례, 건강회복사례가 있으면 제보해주십시오.

dobo@korea.kr

 

(경남공감 2021년 9월호) 박정희 사진 김정민

더 큰 경남 더 큰 미래


 



 

94세 노익장 정차종 어르신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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