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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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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빛 물들어가는 김해 봉황동유적공원

온라인 명예기자단 박치곤

박치곤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 위치한 봉황동유적공원은 '김해패총'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3년 사적지로 지정된 봉황동유적은 고인돌과 함께 불뗀 흔적 등이 확인 되기도 했습니다. 유적을 살펴보기 위해 찾아도 좋지만 지금 처럼 가을 빛이 완연한 공원에서 한적함과 함께 힐링의 시간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인 곳으로 찾아도 좋습니다.

 

 


봉황동 유적 안내판을 따라 숲길을 걷듯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가을의 중심부에 들어와있는 듯 높은 파란하늘과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마음의 평온함을 얻어다고 연인이나 친구, 그리고 가족들 단위로 공원을 찾아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의 실내에서 대부분 생활해야하는 요즘, 지쳐있는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공 하나를 들고 공원을 찾아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알수 없는 짠 함이 느껴 집니다. 백신 접종률이 좋아져 감에 따라 바깥 생활이 조금 더 자유로워 져 아이들이 마음 놓고 소리지르며 놀 수 있는 시기가 빨리 당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 의자나 돗자리를 깔고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가을을 느끼는 풍만하고 넉넉한 마음은 예년이나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푸른 하늘 만큼 시원하고 청량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 돌아 갔으면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피톤치드 뿜어내는 나무들 사이로 걷다보면 힐링이 되어줍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느긋한 여유를 부려보며 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파란 하늘과 가을색으로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봉황대 유적공원을 즐깁니다.

 

 


봉황대유적공원에는 고상가옥과 전망대 같은 건물들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보수가 이뤄지고 있어서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없었지만 깔끔하게 유지보수 되고 나면 더 튼튼한 건물들의 모습과 함께 할 수 있겠지요.

 

 


봉황대유적공원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보면 하얀색 작은 물체들이 흙 표면에 보이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조개 껍데기입니다. 바닷가도 아닌 도심지 중심에 조개껍데기들이 많은 것을 보며 누가 이 많은 조개를 먹고 껍데기를 버렸었나 라고 생각 해 볼 수 있지만 봉황동 패총 유적이 있는 것을 기억해 보면 이곳이 옛날 바다가 인접했던 곳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 속의 길을 따라 걸어들어갑니다. 낙엽들과 함께 바람이 일렁일때마다 나뭇잎들이 몸을 부대껴 내는 소리가 매말라있던 감성을 이끌어내는 마법을 부립니다. 가을탄다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평소에는 모르고 지내다가 지금 무렵에 저절로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컬러풀한 색을 자랑하는 봉황동유적공원의 모습, 작은 구릉에 지나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이곳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출렁이던 곳이었음을 상상합니다.

 

 


억새풀이 넓게 펼쳐졌던 곳인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소박한 모습으로 군락을 지어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과정에서 환경이 조금 바뀌어서 그런것일까요?

 

 


봉황대에는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바로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사랑 이야기인데요.


가야의 오래된 설화인 황세장군과 출여의 낭자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 보겠습니다.


가락국 제9대 겸지왕 때 남대정동에 사는 출정승과 북대사동에 사는 황정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고자 약속했습니다. 이후에 황정승은 아들 세를 낳고 출정승은 딸 여의를 낳았으나 출정승의 마음이 변해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며 여의를 아들로 키우게 됩니다.


여의는 자라면서 남자 옷을 입고 서당에 다녔는데 이것을 수상하게 여긴 황세는 개라암(사진 속의 황세바위)에 올라 오줌 멀리 누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 합니다. 여의는 바위 뒤로 돌아가 마침 그곳에 있던 삼대로 오줌을 누어 위기를 모면 했습니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 거북내에서 멱을 감게 되자 더 이상 여자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된 여의는 편지를 물에 거슬러 띄워 보내 황세에게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출정승도 황세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으로 믿고 두사람의 혼약을 맺어주게 됩니다. 얼마 후 신라군이 가야를 침범해오게 되자 황세는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고 이에 왕은 황세에게 하늘 장수라는 장군 칭호를 제수하고 외동딸인 유민공주와 혼례를 시켜 부마로 삼게 됩니다.

 

 


여의부모는 파혼당한 여의낭자에게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를 원했지만 낭자는 끝내 혼자 살다가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죽게 됩니다. 공주와 혼인했던 황세장군도 여의낭자를 잊지 못하다가 마음의 병을 얻어 그 해에 역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성안 사람들은 둘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매일 같이 놀던 개라암에 작은 바위를 얹고 서남쪽의 것을 황세돌, 동남쪽의 것을 여의돌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홀로 남은 유민공주는 봉황대 서쪽의 임호산으로 들어가 수도 정진하였는데, 이때문에 임호산을 유민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절을 지키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게 된 여의낭자를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은 1975년 여의각을 세우고 매년 단오날에 여의제를 열고 있습니다.

 

 


봉황대가 있는 주변 지역 일대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뤄졌던 곳입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봉황동유적공원은 삼한시대부터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근에서 호안석, 접안시설, 수상가옥지, 토루 등이 조사되어 이렇게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현재, 김해시민들이 사랑하는 봉황동유적 공원이 되었습니다. 가을색 연연한 풍경을 눈으로 감상하고 마음으로 담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누려볼 수 있는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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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곤


 

 

 

가을 빛 물들어가는 김해 봉황동유적공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을 빛 물들어가는 김해 봉황동유적공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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