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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로지향이 떠오르는 양산향교와 춘추공원

온라인 명예기자단 김현정

 

 

양산시 교동110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양산향교는 19828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되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양산의 선암산 자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는 유유히 양산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 전저후고형의 좋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향교시설이나 서원 같은 건축물을 보기만 해도 고리타분하게 여기거나, 그저 오랜 세월의 흔적 정도로만 생각하고 무관심인 분들이 많았지만, 요즈음은 역사의 재발견과 함께 교양 지식을 쌓기 위해 고택이나 향교와 같은 한옥을 찾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양산향교의 홍살문을 지나 향교 내부로 들어 가 봅니다. 양산향교의 정문은 2층으로 된 누각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존을 위해 누각 위로 올라가 볼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상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풍영루는 정면 3,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양산향교는 1406(태종6)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위패는 유생 정호인이 송림정결처에 모셔 화를 면했다고 전해집니다.

 

 

 

1603(선조36) 군수 문홍도가 구기에 대성전을 중창하였고, 1612(광해군4) 군수 조익이 동무와 서무 그리고 정문을 건립했습니다. 이후 1626(인조4) 군수 박곤원이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를 중수했습니다.

 

 

 

1633년 군수 조신준이 명륜당과 전사고 등을 신축하였고 1676(숙종2)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1683년 다시 옛터로 이전하였다가 1828(순조28) 군수 황찬희와 향중 유림이 협의하여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됩니다. 보통 한 곳에 조성되면 꾸준히 뿌리를 내리듯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데, 양산향교의 위치는 이처럼 여러 번 옮겨 다니게 됩니다.

 

 

 

명륜당은 정면 5,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1906년에 향교 내에 사립 원명 학교를 설립하고, 1955년 전교 이의문, 정인홍, 유인목 등이 명륜당을 중수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1956년 향교 내에 양산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되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대성전 중수기를 살펴보면

'내가 정유년(1897) 12월에 양산에 부임하니 양산은 산간 읍이라 순박하고 선비가 독실하여 모두 성현을 숭모하고 학문을 힘쓰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라.

이듬해 봄에 교궁이 깜짝 놀라 소리 지를 만한 화재로써 서까래가 검은 흙이 되도록 다 타버려 나의 불근한 허물은 이미 면하기 어려운 바였는데, 일군 사류가 모두 놀라고 탄식하면서 달려가 성패를 별처에 이봉하고 조석으로 지신에게 의지하다가 군인과 더불어 중수할 것을 합의했으나 재력이 부족해 시공할 발도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먼저 일월봉을 희사하여 수창하고 군내의 사인 정임교와 류기윤이 재물과 정성을 다하여 자금을 모아 공역을 시작하고 매일 공사 감독을 성실히 하여 일 개월여 만에 준공되니 당우가 한결 새롭고 기둥과 보가 이에 빛나는 지라. '

이하 생략

 

 

 

또한, 향교중수기에는 '학교란 것은 국가의 다스리는 근원이요, 후학의 입덕하는 바른 문이라. 우리 국가의 수학하는 제도는 옛날 하은주 3대와 그 융성함을 비하리라. 그 가운데 성리학에 있어서는 영남이 더욱 성하였으니 양산은 영남에서 한 추로지향이니라.

지난 계해년 가을에 내가 이 고을을 맡아 부임해 왔을 때, 향중 선비들이 향교가 기울이지고 무너졌음을 민망하게 여겨 유가에서 약간의 금전을 거두어서 옛 모양에 따라 보수 하였는데, 안군 경록이 그 역할을 주간한 결과 대성전과 명륜당과 동서무와 동서재가 모두 웅장하고 빛나게 되었으니 어찌 유림의 큰 다행이 아니리요. -이하 중략-

 

 

 

향교 중수기에서 언급된 추로지향이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란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곳을 말합니다. 양산향교의 내삼문을 통하면 대성전으로 향할 수 있는데, 잠겨있어서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 향교는 조선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바깥 풍경은 현대의 것이기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화를 보면 멀티버스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바로 여러 개의 시공간이 공존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양산향교는 목조기와 집으로 4채의 건물과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갑오경장 이후 향교 명륜당 일부에 상서면사무소를 설치하여 이용했던 적이 있으며 1909년 신교육의 시대 요구에 따라 유림대표들이 원명학교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1911년 양산공립보통학교가 인가되어 잠시 향교를 사용하다 양산으로 이전해갔고, 상서면사무소는 19217월 물금읍 화학동 390-3번지로 이전해 갔습니다. 해방 이후 양산고등공민학교 및 기술학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양산향교는 202012월에 대성전이 보물 제2094호로, 명륜당은 보물 제2095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탁월해 보물로 지정된 것이며 밀양이 역사문화 도시로서의 위상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양산향교를 둘러보고 국개마을을 통해 춘추공원으로 올라 가봅니다. 현충탑의 아찔한 높이의 계단은 건강 계단이란 이름이 붙어 한 계단씩 오르면 건강을 챙겨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현충탑을 오르기 위해 길게 뻗은 계단을 오르며 건강도 챙겨가고, 소모된 칼로리와 건강수명 연장을 알려주는 지표가 안내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즐기며 올라가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목적지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춘추공원에는 현충탑 주변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도시 관리 계획으로 결정된 근린공원으로 2010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애항의 정신을 전승하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 및 화합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도시 지역권 근린공원입니다.

 

 

 

춘추공원의 현충탑에는 한국전쟁인 6.25 전쟁에 참전했다 숨진 지역 출신 용사 79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군인 720, 경찰 48, 애국단원 23명 등으로 현충탑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춘추공원에는 현충탑 외에도 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삼조의열비와 39위 항일독립운동 유공자 등을 모신 충렬사,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 기념비와 흉상 등이 있어 순국선열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며, 시민들의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기자단
 

추로지향이 떠오르는 양산향교와 춘추공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추로지향이 떠오르는 양산향교와 춘추공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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