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도심 산책의 매력은 좋지 않은 공기로 덮인 환경 속에서 그나마 맑은 공기가 흐르는 숲 속을 걷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창원은 계획도시여서 그런지 주택과 공장으로 둘러싸인 도시지만 곳곳에 걷기 적당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어떤 곳은 산길을 걷는 느낌이 강한, 한적한 곳도 있다.
대원동 현대아파트 쪽 대상공원 거님길 초입.
어제 가본 대상공원 거님길이 그랬다. 대원동 현대아파트 쪽 거님길 진입로에서 시작해 시의거리~두대터널 위~시민체육시설~충혼탑으로 이어지는 길로 총 1.7㎞ 거리의 거님길은 휴일임에도 쉬엄쉬엄 걷는 1시간 길에 마주치는 산책객은 어쩌다 한 번쯤일 뿐이었다.
대원동 현대아파트 쪽 초입엔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두 곳이다. 인도에서 시작되는 계단길과 고물상 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난 황톳길. 도심의 야산 숲길이어서 그런지 길이 이곳저곳 여러 갈래다. 그렇게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미끄러지지 않도록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이 거님길에는 소나무가 많다. 매미 소리 울창한 짙은 녹색의 여름은 아니지만 솔향이 솔솔 뿌려지는 것 같다.
얼마 오르지 않아 시티세븐과 대성공원 시점(만남의 장), 그리고 대상공원 시의 거리로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한다. 출발하고서 불과 300미터다. 시의 거리 쪽으로 향한다.
초입에서 고개를 올라섰다 싶으면 나타나는 이정표.
‘하루만의 위안/조병화/잊어버려야만 한다/진정 이저버려야만 한다/오고가는 먼 길가에서/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시의 거리. 그렇다고 멋진 대리석에 새겨진 시들은 아니다. 그저 외다리 나무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적당한 크기의 얼굴에 시어를 머금은 나무 패널이다. 이 패널들은 수수한 모습이다. 심심하다 싶을 정도의 거리에 적절히 배치되어 나그네에게 한 수씩 읊어준다.
거님길을 걸으면서 쉬엄쉬엄 시를 감상하는 게 이 길의 매력 포인트.
시의 거리 일정 구간은 높낮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평지 길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에겐 더없이 반갑겠다. 거님길 가에는 띄엄띄엄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낙엽이 먼저 앉은 벤치도 가을을 타는 듯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조금씩 길을 비켜 능선 길을 안내하고 있다. 숲은 우거졌어도 간간이 바깥 세상을 보여준다. 왼쪽으로는 지귀동 주택가와 멀리 반림동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오른쪽으론 두대동 주택가가 눈에 들어온다.
대상공원 능선길에는 제법 키가 큰 소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그냥 밖을 내다보지 않고 걷는다면 깊은 산속을 걷는 느낌인데, 바로 몇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인근에 주택가가 있다는 점이 오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약간 가파른 내리막이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면 두대터널 위다. 왼쪽으론 창원컨벤션센터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두대동 주택가다.
창원컨벤션센터로 내려가는 길.
여기서부터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충혼탑 방향으로 거님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책로는 어느 정도 동쪽으로 향하다가 체육시설이 있는 지점을 지나면 하늘이 뻥 뚫린 개활지를 만나는데 여기서부터 산책로는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누군가의 무덤 때문인지 잔디밭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지귀동, 반지동, 반림동, 그리고 반송공원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 병풍같이 놓인 산은 정병산이다.
개활지를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서려는데 시티세븐 갈림길에서 보았던 아저씨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이 산길을 운동장 트랙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줄곧 뛰어서 반환점을 돌아 오나 보다. 그런데 별로 지친 기색이 없다. 숨소리도 차분하다. 대상공원 거님길이 그런 곳이다.
한적한 거님길이라 산책객을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개활지에 당도하면 반림동 쪽 주택가와 멀리 정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괜히 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왼쪽에서 바스락 소리가 황급히 난다. 청설모다. 이놈은 산책객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가만히 있더니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드니 나무를 타고 오른다. 나무에 올라서는 또 한참 내려다 본다. 산책객의 행동을 관찰하나 싶을 정도다. 그러더니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타면서 모습을 감춰버린다.
청설모가 나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청설모 대신에 다람쥐를 봤더라면 하는 괜한 아쉬움을 갖고 좀 더 걷다 보니 문성대학과 대원동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을 만난다. 이정표를 보니 충혼탑은 860미터 남았고 왼쪽 문성대학은 100미터, 대원동 주택지는 200미터다. 시의 거리가 끝난 지점에서부터 여기까지 280미터로 나와 있다. 지도에서 거리를 재어보니 지금까지 거의 1킬로미터를 걸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오르막이다. 여기저기 숲에 대해 설명한 패널들이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란 얘기겠다. 조금 더 오르니 작은 막돌탑들도 보인다. 작긴 하지만 공원을 찾은 사람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충혼탑 뒤쪽 대상원원 정상부근에는 막돌탑이 몇 개 쌓여 있다.
정상에 조성된 체육시설들.
대상공원의 정상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체육시설이 많다. 충혼탑 400미터를 남겨놓은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늘푸른 전당이 나온다. 그 역시 4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자연히 걸음이 빨라진다. 서서히 바래가는 나뭇잎들이 오히려 숲을 더 아름답게 장식하는 듯하다. 도심 낮은 산이라 그런지 단풍은 좀 늦은 듯도 하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데 오른쪽으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드는 모습이 살짝 보인다.
처음엔 곧은 나무기둥인가 싶다가 이내 그것이 충혼탑 윗부분이란 걸 깨닫는다. 탱크의 포신 3개가 우뚝 솟은 모습인데 숲 속에선 실루엣으로 비쳐 꼭 곧은 나무 같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꼬불꼬불한 하산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꼬불꼬불 길이 재미있다. 골을 타고 길이 났기 때문이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요란하게 들린다. 충혼탑 사거리에서 종합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충혼로가 바로 앞에 있다. 길이 충혼로 쪽으로 빠져나가나 싶었는데 오른쪽으로 휘어지더니 충혼탑 주차장으로 연결된다.
총 길이 1.7킬로미터 정도.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니다. 빠른 걸음이면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주말, 한 번씩 도심에 있는 숲을 거닐 수 있는 여유는 만들기 나름이다. 아무리 가까이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해도 찾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