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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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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순례 ② 거제 책방익힘

책과 바다와 사람이 함께 무르익다

동네책방 순례 ② 거제 책방익힘


 

 

 

 

 

대형서점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여기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동네서점을 가면 사뭇 다르다. 단 한 권의 책도 저마다 자기 자릴 정해 놓은 듯,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그대로 놓여 있다. 왠지 그런 책들에는 한 번 더 시선이 간다. 그 지역을 알려면 동네 책방을 꼭 들러 보라고 했다. 지난 호 김해에 이어 이번엔 거제로 향했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엔 보물찾기 선물을 꼭꼭 숨겨놓은 것만 같은 ‘책방익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의 드넓은 흥남 바다가 한눈에 보일 만큼 높은 곳에 있는 ‘책방익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책부터 눈에 띌 줄 알았던 공간엔 기분 좋은 커피향기가 먼저 코끝에 매달린다. 1층 35평 남짓한 공간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왼쪽 통유리 한쪽을 가득 메운 북 토크 포스터들을 보고서야 이곳이 책방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락방을 오르는 것처럼 꽤 많은 계단을 올라 2층 책방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통 창문 밖으로 탁 트인 바다 전망이 그대로 한눈에 담긴다. 15평 정도의 아담한 공간에 비치된 책은 모두 1700여 권. 바다 곁에 서 있는 것 마냥 나란히 정렬된 책들은 어느 하나 어색할 것 없이 창밖 풍경과 어우러졌다. 이곳을 방문한 방문객들의 손 편지도 눈에 띈다. 테이블 수는 적지만 구석구석 나만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은 공간이 많았다. 격자무늬 창문 앞 나무로 만든 책걸상이 방문객들이 가장 ‘애정하는’ 곳이라 했다.

 

책방지기 김수현(39) 씨가 수줍음을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넨다. 작고 아담한 체격에서 왠지 모를 단단함이 느껴졌다. 거친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한 곳에 어떻게 책방을 열게 됐는지 물었다.
 
 

어머니 요양 차 내려온 거제, 3년 전 책방 개점

“제가 강원도 원주 사람이거든요. 집 근처에서 책방을 열려고 가게들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엄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모든 걸 멈추고 엄마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죠. 통영, 부산, 거제를 다니다가 엄마가 거제가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만에 다 정리하고 무작정 내려왔어요.”

지형도 사람도 거친 거제에서 수현 씨는 자주 놀라야 했다. 거제에 정착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그동안 ‘내가 이방인이구나, 내가 타지사람이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혼자 정착을 못 하고 있었던 거였다며 오히려 요즘엔 마을 사람들이 오이며 가지며 각종 채소에 먹을 것까지 툭툭 던져주고 가는 따뜻한 마음에 뭉클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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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과 스며듦, 그 속에서 길을 찾다

 

독립서점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책방 이름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커피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매나 곡식을 가을볕에 익히면 성질이 변하면서 맛있게 익어가잖아요. 이 공간에서 커피랑 사람이랑 자연이랑 다 같이 섞여서 맛있게 익어갔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익힘’이란 말을 붙이게 됐어요.”

 

시간이 만들어 주는 ‘익힘’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수현 씨는 책을 고르는 기준 또한 특별하다. 지금껏 책을 읽어온 모든 시간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자신이 읽고 고른 책이 함께 읽어갈 누군가에게도 삶의 방향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처럼 가야 할 길이 순탄치 않고, 머리가 아플 만큼 고통스러워도 읽고 난 후 꼭 무언가가 남는 책들을 주로 추천하고 있단다.

 

고객의 80%가 관광객이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은 거제시민들이 더 자주 방문하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객은 30명, 주말엔 50~60명 정도나 된다.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커피를 맡고 있는 사람은 ‘책방익힘’ 손님으로 만난 바리스타 김태원(35) 씨다. 3년 째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영역은 터치하지 않는다는 두 사람이다. 수현 씨는 본인의 능력치를 다 발휘하지 않고, 책방이랑 조화를 맞추려 노력하는 태원 씨가 참 고맙다고 했다.

 

“자주 오시는 분들은 책에 한정 짓지 않고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으시더라고요. 대단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또 생각해보면 없는 게 없어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책도 있고 커피도 있고, 고양이도 있거든요. 사람들은 엄청나게 크고 대단한 것에 희열을 느끼고 감동하지 않더라고요. 늘 그 자리에 있는 이곳이 익숙해져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방익힘으로 와서 인생 책 한 권 만나보세요”

 

‘책방익힘’은 지난해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한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이병률, 장혜령, 오은 등 시인들이 참석한 북 토크나 작가 낭독회 행사들이 성공적으로 열려서다. 수현 씨는 행사를 도맡아 해준 이제니 작가 덕분이라고 했지만, 이제니 작가는 도리어 ‘책방익힘’에게 고맙다고 했다. 지역 주민을 포함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책방익힘’이 해결해줬다며,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북 토크를 하고 싶다는 작가들의 문의가 잇따른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책방지기로서 조금 욕심을 내본다면 이곳을 찾는 분들이 여기서 한 권의 인생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어렵다면 그냥 오셔서 잠깐이라도 여유를 가지셨으면 해요. 그런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꾸준하게 자주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제 인생도, 우리 사회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책방익힘

위 치 거제시 장목면 절골길 12

운 영 12시~오후 9시, 매주 화요일 휴무

연락처 010-9588-0316

 

(경남공감 2021년 11월호)백지혜 사진 이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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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경남 더 큰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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